모범농촌순례
- 등록번호
- 00008946
- 생산일자
- 1930.09.09
- 생산지역
- 춘천시
- 생산자
- 매일신보
- 수집처
- 미상
- 소장자
- 국립중앙도서관
-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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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09월09일(2면 1단) (전회의 계속) 돈을 쓰게 될 때에 준거하는 근본정신이라 한다. 인간의 세 가지 큰일인 혼상제때도 이를 참작해야 례가 과불급이 없도록 한다. * 동네의 발전을 위하여도 소위삼위주의가 있다. 첫째가 동네를 위하여는 청춘의 모든 것을 받치자는 것이요. 둘째는 제집을 위하는 것이며 셋째가 남을 위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인성의 본체에 근거를 삼고 한 장의강령이나 한 줄의 결의가 없으면서도 훌륭히 실행해 나아간다 한다. 즉 내 몸이 중하건만 조상은 더 중하고 자손은 내 다음 이오 내 집은 귀하건만 동네는 더 귀하고 이웃사람은 내 집에 다음가는 것이라는 견해이라 한다. 견해는 사람따라 다르기도 하련만은 어쨌던지 큰 목표만을 세우고 세칙이 없음만으로도 선전의 명을 가졌다고 하겠다. (전회 사진설명 두레먹이날 풍장치고 노는 청년단원들) 강원도의 모범농촌은 다섯 군데라 한다. 춘천에는 이미 소개한 거두리와 다음에 소개하려는 송암리의 두 곳이 있고 그 외에도 양구의 고대리와 원주의취병리와 통천의 의룡항리가 그것이다. 그러나 대체에 있어서 그지 저 된 시일이 얼마 못되어 다른 각도에 견주어보면 별로 볼만한 시설도 적고 훨씬 뒤떨어진 것이 있으리라 한다. 그런데 그이유로는 첫째 민지가 비교적 진보되지 못한 까닭이라 하겠는데 그는 태산과 준령이 가로막혀서 교통이 불편한 것도 원인의 한가지이지만 그보다도 더욱 중대한 이유로 춘천의 어느 유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강원도의 인사이동을 보건대 대체로 불리한 것이 있으니 그는 강원도를 2등지로 보는 것을 웅변으로 보는 것이라 하겠다. 첫째로 도의간부를 실례로 들어 말하겠으나 부장이나 과장급의 이동도 그렇지만은 다만 도지사의 오고가는 것을 보건대 대개 초임지사의 사무견습지로 되는 모양이오. 또는 정리지사의 한때 안식지대로도 되는 모양이라 하겠다. 이는 강원도를 지리적으로 천대하는 까닭인 듯 할뿐 아니라 오고 가고하는 당국자들도 또한 그릇된 선입견에 지배되는 듯하니 이러고서야 그 시정에 있어서 무엇 불만한 것이 있을 수 없을 것이며 따라서 강원도로 하여금 오늘날과 같이 이등지의 대접을 받게 됨이 아닌가고 본다고 한다. 이곳에는 락지후 처음으로 온 기자로서 위와 같은 춘천 모유지의 말을 들을 때에 다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기자는 다행이 그것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원주를 가려하였으나 저번 장마로 길이 험악하다고 하기에 춘천읍내에서 가까운 송암리를 찾았다. *지씨왕국 고주관계가 뚜렷 송암리에는 춘천군 내에서는 첫손가락을 꼽는다는 대지주가 있으니 그는 지규문씨이다. 일찍이 신남의 면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청년단의 고문에 추천되었으며 명실이 모두 이 동네의 주인격이다. 구한국시대에는 궁내부주사도 지내었고 오랫동안 서울 뚝섬에서 살다가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에 송암리로 옮겨와서 대궐같이 굉장한 저택을 짓고 73호라는 대가족을 거느리고 가위 왕 노릇을 하는 모양이다. * 지규혁씨는 지규문씨의 아우로서 지금30세의 유위한 청년인데 일찍이 서울와서 학교에도 다니었으나 1923년(대정12)에 일본내지모범농촌을 시찰하고 와서 황연자각하여 송암리 청년단을 조직하고 자기가 단장이 되어 산업개선 시설장려 근검저축 풍속개량에 관하여 단원을 지휘 노력하였다. 그러다가 지금은 신남면장을 겸하여 면치에 골몰하는 동시에 자기의 왕국인 송암리의 개량을 위하여 필사의 노력을 하는 중이다. *퇴비모범리 실적은 나날이 현저 이와 같이 유력한 사람이 사는 송암리도 10여년전까지에는 모든 것이 말이 못되었다 한다. 그러나 지씨형제가 있기 때문에 강원도에서는 최초로 1926년(대정15)에 모범농촌으로 지정되어 꾸준한 노력을 하여 온 결과 1927년(소화2)에는 총독부로부터 조성금으로 300원의 보조를 받게 되었다 한다. 그리하여 송암리는 이미 기분운동을 벗어나고 이제는 실제운동에 들어서서 그 실적은 세월에 더불어 볼만한 것이 많게 된다한다. 특히 비료중제에 힘을 써서 춘천군농회의 주최인 품평회에서는 여러 번 표창과 상금까지 받았을 뿐만 아니라 퇴비모범리로 지정되는 명예를 받았다는데 이는 모두 청년단이 노력한 공로이라 한다. (사진우는 지규혁씨, 중앙은 여자청년단원이 모심는 광경, 좌는 지규문씨)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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