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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ncheon Digital Archives

모범농촌순례
등록번호
00008943
생산일자
1930.09.06
생산지역
춘천시
생산자
매일신보
수집처
미상
소장자
국립중앙도서관
내용
1930년09월06일(2면 1단) 이제 거두리의 청년단이 활동한 결과가 표면에 나타난 것을 살피건대 대개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사회시설 시간과 위생사상 고취 산속에는 책력이 없다 는 말도 옛말이다. 대체로 농촌에서는 시간관념이 적어서 그를 일종의 자랑처럼 생각한때도 있었지만은 이는 농촌의 치욕이라 하여 거두리 청년단은 첫째 시간관념과 위생사상을 동민에게 철저케 하고자 시계가 달린 게시판두개와 종 대 두 개를 동네의 요소에 설치하였다. 그리하여 동네사람들이 시간을 잘 지키게 하는 한편으로 아침점심때 저녁때로 하루에 세 번씩 큰 종을 울려서 온 동네 사람에게 시간을 알리운다. 종은 무슨 비상한때에 소집령으로 쓰기도 한다. 그리고 공동작업장에는 저녁 종소리로 모여서 가마니를 치는데 100여대나 되는 가마니틀은 낮이면 부녀자와 늙은이 어린이에게 쓰이고 밤이면 장정들이 쓴다. 이렇게 만든 가마니는 돈으로 변하여 농사밑천을 보태게 된다 한다. * 공동우물도 세 곳이나 파고 공동목욕탕이 한 군데 있는데 목욕탕은 설치된 뒤 오늘까지 별로 쉬일 새가 없다 목욕을 거저하면 그 비용이 따로 들것임으로 한사람에게 얼마씩 돈은 받으나 물은 우물을 끌어들이고 나무도 거저 때는 터임으로 별로 큰 비용은 아니 든다. 동네사람들이 머리는 대개 깎았으나 어려서 글 못 배워 갑갑한 사정도 많음으로 소위 문맹퇴치의 운동도 맹렬하여 농한기에는 공동작업장이 학교로 변하고 또 예배당도 수요일과 주일만 빼어놓고는 학교노릇을 하는데 두 곳을 합하여 배우는 사람이 백여명이나 되고 여름에는 유치원행세도 하게 된다 하니 사람은 환경을 따라서 과연 변하는 것이다. *퇴비증제 강원도는 누구나 아는 바와 같이 땅은 넓고 백성은 적어서 다른 도 보다 발전할 희망이 많은 곳이나 불행이 땅이 넓은 만큼 경지가 개척되지 못하였으며 또 지미가 비교적 기름지지 못하다 한다. 그리하여 도당국에서는 특별히 퇴비의 제조를 장려키 위하여 그 성적이 좋은 동네는 우승기와 상금을 주었다. 그 결과는 농가로 하여금 거름을 자급케 하였는데 거두리는 1929년(소화4)도에 춘천군농회가 퇴비우승모범리로 지정하였다. 그런데 농촌에서는 이를 무상의 영광으로 여기며 농군들은 일부러 자랑까지 하는 것이다. * 그런데 이제 거름증제의 상황을 보면 (현재의 조사) 거두리 81호에서 퇴비사가5,퇴비장이76으로 그 증제총수량은 332,868문이며, 매호평균4,109문이다. 이를 경지면적 전 915반, 답323반에 분배하면 1반에 268문씩이니 값비싼 콩깨묵이나 그 외의 거름은 소용이 없다한다. 퇴비를 만드는데 오직 수고되는 것은 산이나 들에 나가 풀을 베어오는 것뿐이다. * 퇴비 만드는 법은 퇴비사나 퇴비장이니 마찬가지로 뒤깐 소오양깐 도야지우리를 개량하되 그곳에서 거름을 옮기지 아니할지라도 저절로 거름더미로 흘러가도록하여야 한다. 그러함에는 종래의 뒤깐과 오양깐과 도야지우리를 개조하여야한다. 이미 개조한 집이 16호이며 앞으로 곧 실시 될 이라한다. 이런 일도 청년단에서 공동으로 하는 것은 다시 말할 것도 없다. *계돈개량 다른 곳에서 씨를 분배 거두리는 양계와 양돈에 적호한 조건이 구비하였다하여 1927년(소화2)도에 군농회에서 종계172마리와 종돈 각기 30마리씩을 배부 하였었다. 그런데 청년단에서는 닭홰 도야지우리도 종래의 그것을 버리고 완전히 개조하여 공을 드린 보람 있게 금년(1930년(소화5))에는 도야지176마리와 닭488마리를 다른 면에 씨로 보내고 오히려 남은 것이 도야지55,닭259마리가 있다한다. 사진은 종대, 시계, 작업소, 거름집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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