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농촌순례
- 등록번호
- 00008940
- 생산일자
- 1930.09.04
- 생산지역
- 춘천시
- 생산자
- 매일신보
- 수집처
- 미상
- 소장자
- 국립중앙도서관
-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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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09월04일(2면 1단) 사람이 첫째 조건 모범농촌도 농촌임에는 틀림없다. 다가농촌으로도 그곳의사람! 참으로 뜻이 있고 눈물이 있고 또한 굳건한 신념이 있으며 정렬과 성의를 가진 사람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모범이라는 영예를 띠게 된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적으면 적은대로 많으면 많은대로 그 사람네의 행적은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이니 이는 참으로 세상의 소금이며 또한 볕이라 하겠다. 이제 그자는 강원도 춘천의 모범농촌으로 거두리를 소개하기 전에 먼저 이 마을의 훌륭한 역군을 소개해야 그 분네의 남다른 설움과 고심과 또한 빛나는 언행을 말하는 것이 순서일까 한다. * 산 높고 물 깊은 강원도 춘천의 거두리에도 참으로 세태를 걱정하며 살길을 옳게 찾는 사람이 없지는 아니하였으니 그이는 현재 동네면장 이오 거두리 청년단의 고문 박윤원씨다. *지상천국 작은 구세주의 큰이상 일찍이 예수교를 믿어 남다른 세상을 걸어오면서 기울어져가는 세상을 바라보며 한심과 한탄도 마지아니하였고 신앙을 위하여는 목숨도 아끼지 아니하는 그이로서 지상천국의 이상을 실현코자 여러 가지로 마음을 썩이었다. 를 모토로 하고 우선 자기가 살고 있는 거두리로 하여금 이상에 가까운 동네로 만들어보기를 결심하였다. 그러나 그가 예수의신자임으로 동리사람의 조소와 비난 나아가서는 박해까지를 받게 되었을 뿐이었다 한다, * 원래 거두리는 춘천읍내에서 십리밖에 안 되는 곳임으로 다른 농촌보다도 고약한 버릇은 몇 갑절 자심하여 음탕하고 잡되기란 말이 못되었고 동민들은 술과 노름으로써 일을 삼다시피 하였다. 81호에 인구가 겨우 440여인밖에 못되는 동네에 이것만은 시끄럽고 싸움 많기로 유명하였다는데 거두리로 하여금 1927년(소화2)부터 모범농촌으로 지정하게 되기까지에는 여간한 고심과 노력이 아니었다한다. 그리하여 1928년(소화3)에는 총독부로부터 모범농촌 조성금으로 250원의 보조를 받기까지 하였다. *백절불굴 한 가닥 살길을 찾았다. 황폐 쇠퇴하였던 거두리로 하여금 오늘날의 그것으로 만들어 내었음에 잊어서는 아니 될 중심인물이 박윤원씨외 또 두 사람이 있으니 그는 박완섭씨와 그아우 응섭씨다. 박완섭씨는 현재 거두리의 구장으로 청년단의고문이오 그 아우 응섭씨는 일찍이 일본 모범부락을 시찰하고 돌아와서 청년단을 조직하여 산업진흥과 근검저축과 풍속개량방면을 도맡아가지고 단원으로 더불어 이에 전력을 다하는 동단의 단장이다. * 거두리의 선각자 박윤원씨는 말하되 이와 같이 세 사람의 뜻있는 동지가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다한 결과는 필경은 동네사람을 동지로 만들어서 청년단을 조직하여 이제는 모든 것을 서로 믿고 허락하여 오직 잘 살기위하여만 힘쓰게 되었다. 사람 셋이 무엇이 그리 대단할까 만은 백절불굴하고 합심협력만 된다하면 도탄 속에서 헤메게 된 수많은 사람을 능히 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사람들로 하여금 새로운 살길로 인도할 수 있는 것이 큰 것임을 알았다. 그리고 남아로 태어나서 인류의 행복을 위하여 대성할만한 큰 그릇이 못될진대 차라리 내 고장을 위하여 공헌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한다. 더구나 닭의 입으로는 될망정 소의 궁둥이가 되지 않겠다는 자부심이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분운동 어린이도 우국지사이다. 세 사람(박윤원씨, 박완섭씨, 박응섭씨)의 선각자의 꾸준한 활동은 거두리를 춘천의 모범농촌으로 만들게 되었다. 그러나 원래 여러 씨족들이 자자손손 거주하여오는데다가 옛날시대에 있어서 박씨의 이 동네의 지위가 별로 유리치 못하였든 관계로 관습과 전통을 부셔버리고 서로 한 덩이가 되기까지에는 실로 십여 성상이 걸리었다한다. 그 진원지는 이 마을에서는 가장 새로운 붉은 기와집이니 이는 예배당이 분명하다. 그리하여 어린이들도 모두 우국지사를 본떠서 라는 말과 또는를 어렵지 않게 쓴다. 아직도 기분운동을 넘어서지 못하였으나 모범농촌으로 지정 된지 4년밖에 아니 된 곳으로는 놀날 만큼 볼만한 시설이 있으며 팔팔한 기색이 넘친다. 읍내가 가까운 것이 옛날에는 모든 폐풍의 큰 원인이 되었던 곳이 이제는 그와 정반대의 현상을 이루게 되었다. 첫째로 읍내의 고등보통학교와 농업학교 에 중등정도에 통학하는 사람들이 많아짐을 따라서 거두리의 훌륭한 일꾼은 점차로 늘어갈 뿐이라 한다. 사진의 우는 박완섭씨 중앙 박윤원씨 좌는 박응섭씨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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