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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ncheon Digital Archives

춘천오탄리(春川梧灘里)의 소작쟁의 진상 강원지국 일기자
등록번호
00008851
생산일자
1930.05.26
생산지역
춘천시
생산자
매일신보
수집처
미상
소장자
국립중앙도서관
내용
1930년05월26일(3면 3단) 군자는 재연한 춘천군 사북면 오탄리(춘천읍에서 서북으로 8리) 소작쟁의의 진상을 조사하기 위하여 22일 아침 자동차로 출발 험한 산길을 70 리나 달려 정오 때 쯤 하여 사북면사무소에 이르렀다. 차를 그 앞에 멈추어 두고 10 리의 험난한 을 털털 걸어 올라가노라니 땀ㅅ되가 착실히 흘리었다. 한참 후에 고개 마루에 올라서니 한눈아래에 오탄리의 마을이 조망된다. 지금이 다사다망한 농번기임에도 불구하고 마을에는 농부의 그림자 하나 없고 그럴법하게 생각하는 탓인지 쓸쓸한 수운에 잠긴 듯한 것이 기자의 마음을 지배한다. 이른바 이것이 이 아닐까? 하루 세 때를 겨우 호구하기 위하여 경우를 같이한 소작인끼리 생사를 걸고 다투고저 과 을 예리하게 갈고 있지나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저- 대머리 산을 보라 그리고 화전을 부치기 위하여 을 벗겨서 붉은 살만 남은 그 참상을 보라! 저들은 저와 같이 까지 벗겨 먹으면서도 어째 굼주린가? 무엇이 저들을 그렇게 만들었는가? 생각이 여기에 이르매 횡폭한 지주에게 ??되면 서있는 우매하고 그러고 너무나 온량한 저들의 정경이 새삼스러이 애통하게 생각 된다. (따집어 말해 두지만 기자는 함부로 소작인의 편만 들려고 덤비는 것은 아니다. 전 지주에게 대하여 이렇게 말함에 확고한 근거가 있음으로이다.) 령마루는 천하의 모-든 바람이 이리로 달려 모이는 듯이 서늘하기가 곳 일다. 쉬이 기를 잠시 동안 하였으나 더위를 물리치고 오히려 추위를 느끼면서 다시 정광형의 가파로운 언덕을 내려갔다. 자- 먼저 김지주의 사음 윤풍균의 집으로 가자. 거기 두류하는 이란 경성에서 온 김지주의 대변자를 만나지 않으면 안 되겠다. *대저 김지주의 소유지는 오탄리에 있어서 70여 호가 그의 소작인들이다. 1929년(소화4) 즉 작년10월9일로써 전기 70여 호중 56호의 소작인에 대한 소작계약이 만기가 되었으므로 다시 익10일 향후 5개년간의 신계약을 지주와 소작인 사이에 체결하였음으로 소작권의 이동이 있을까하여 위? 하던 56호의 소작인들은 안도의 가비여운 숨을 돌리고 있었다. 그러나 어떤 까닭으로인지 동 11월 20일 계약일로부터 겨우 한 달에 돌연 김 지주로부터 하는 조건을 강요하며 을 말해 왔다. 원래, 극상등의 토지에서도,1반보 6석의 산출은 전연 불가능하며, 오탄리 일대의 토지에서는 잘나야 1반보 30석4, 5두 (군농회와 사북면 당국이 증명함)에 불과한데 같다가, 3석의 지조는 너무나 엉터리없는 요구이므로, 10여 호를 제한 외 40여 호의 소작인들은 단연히 이것을 거부하여 마침내 토지 소작권을 빼앗기게 된 것이다. 그러면 전기 10여 호의 소작인들은 어째, 그리하여 어떠하게 지주의 무현한 요구를 승인 하였는가? 그 내막을 여기 써 둘 필요가 있다. 그 당시 김지주의 사음으로 황영주란, 가장 주인에게 충실한 주구가 있었다. 그는 주인에게의 의리?와 자기의 수완이 이러하다는 것을 자랑하고 또 앞으로 영구한 은총을 누릴 혼담으로 56호의 소작인들을 꼬이려 다녔으나 좀처럼 응하지 않음으로, 드디어 교묘한 일책을 짜내었으니, 즉 벼 종자를 줄 테니 그 영수증을 쓰는 것이라 고 기만하여 문맹이고 우매한 저들의 앞에서 자기가 문서를 지여 용역하게 저들의 날인을 받은 것이 곧 이란 증?서 였다.-이리하여 전기 10여 호는 지주의 오구대로 굴종한 으로 된 것이다. (미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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