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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ncheon Digital Archives

정동필진(征東筆陣) (종(終))
등록번호
00008821
생산일자
1930.04.13
생산지역
춘천시
생산자
매일신보
수집처
미상
소장자
국립중앙도서관
내용
1930년04월13일(7면 1단) 춘천의 명소는 오직 소양강뿐만이 아니다. 왕석(往昔)에 봉수대를 설하였었다는 봉의산이 읍 북쪽에 돌올(突兀)하게 촉립하야 기관을 정하여 있고, 현 도청내에는 전일의 이궁 그대로 남아있으며, 남산면 방곡리에는 직하 12장의 구원폭이 있다 하고, 또 그밖에도 가지가지의 명승고적이 처처에 있다 한다. 그중에도 이궁은 거금 40여년전 당시 춘천유수 민두호가 고종의 명을 받아 조정이 위급할 때 몽진용으로써 사용하기 위하야 2개년반의 세월을 비하야 건립한 궁궐이니 지금에는 강원도청의 일부로 사용된다. 강원도에 와서 명승지를 찾자하면 실로 끝이 없을 것이니 금강산은 다시 말할 것도 없고 오대산과 두타산도 좋다하며 설악산은 이번 본사 주최 명승지투표에 그 이름이 더 한층 유명하여지지 아녔는가. 고성의 건봉, 유점 양사와 평창의 월정사는 모다 수천백년의 장구한 역사를 가진 훌륭한 대찰들이오, 고성의 온정리온천과 이천의 갈산온천과 울진의 울진온천도 또한 유명한 곳들이다 ◇ 강원도는 태고시대에는 예와 맥의 땅이었으므로 고적도 또한 허다하니 철원군 홍원리 궁예의 왕도처와 춘천군 무지동에 2천여년전에 정기하고 있었다는 맥국성지가 의희하게 잔존하여 있다 하고 또 영월군 영흥리에는 단종대왕의 능묘와 충신단이 있다 한다. 어찌 그뿐만이랴. 예의 유명한 관동팔경 - 통천의 총석정, 고성의 삼일포, 간성의 청간정, 양양의 낙산사, 강릉의 경포대, 삼척의 죽서루, 울진의 월송정, 울진의 망양정 등은 이름만 들어도 유쾌한 생각이 저절로 난다. 사실 본도는 승지 강산만 키는 각도중 제일이니 나는 시일의 여유가 없어 그곳을 일일이 탐승하지 못하는 것ㄹ 크게 유감으로 생각한다. 오직 후일을 약할 뿐이다 ◇ 본도는 산악이 많아 전도의 칠할이 산야이오 평지는 극소하니 경지총면적이 34만5천여 정보에 불과하고 그중에 답은 8만6천여 정보밖에 아니되어 농업은 전작을 주로 한다. 그러나 근년 본도의 산미가 결코 타에 손색이 없으며 수리와 개간사업도 점차 발흥하야 전도가 유망하고, 그밖에 잠업, 축산, 임업 등도 크게 장려하는 중이다. 동해안의 수산업은 본도내 주요산물이니 말할 것도 없고, 상공업도 근년에 점차진흥하야 장래가 촉망되는 바이다. 그러나 교통상태가 아직 요람시대를 말면하야 장차 적극적시설이 없어서는 아니될 것이니, 동해안선이 준공되면 영동 각군의 교통은 면목이 한번 새로워지려니와 그밖에 있어서는 교통시설에 대한 무슨 큰 계획이 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다. 경춘간에는 사철선이 이미 허가된 것이 있다 하나 기공을 할려는지 말려는지... 하여간 강원도가 금후에 있어 산업의 진흥과 문화의 향상을 도하려면 교통기관 충실에 의하는 외에 별로히 타도가 없을 것으로 나는 생각하였다 ◇ 강원도의 농부가는 과연 처량하기 끝없는 자이다. 나는 그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릴 뻔하였다. 민요를 고음으로 길고 느리게 뽑는 속되지 않는 노래이니, 애음절절한 바 있어 누구나 그 노래를 들을 때는 구슬픈 정회를 금치 못하리라. 아마도 조선 각지의 농가중에 애연하고 고상하기로는 제일일 것이니 무슨 까닭으로 강원도에 농부가가 그와 같이 애조를 많이 가지게 되었느냐 하는 그 원인에 대하여는 이것을 명백히 아는 사람이 없다. 강원도는 경지에 대개 경사가 심하여 기경하기가 몹시 어려움으로 그와 같은 비가가 나왔다고 추상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으나 그것만 가지고 수긍하기가 어렵다. 또 일설에는 녯날 너머 압박이 심하여 그 비애를 농가로 표현한 것이라고도 하나 그렇다하면 압박의 비애가 유독 강원도만도 아니었을 것이니 이 이야기도 얼른 믿기는 어렵다. 하여간 노래라고는 농부가와 강원도 아리랑 타령, 단 몇 가지밖에 없는 본도에 있어서 그와 같이 고상한 비곡이 있다는 것은 어데로 생각하든지 이상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 4월3일 오후 1시, 나는 비록 불과 이틀 동안(사실은 22시간 동안밖엔 못되었지만) 이나마 상당히 다정하여진 춘천을 하직하고 부사장과 함께 다시 경성으로 돌아왔다. 이번 춘천관민 제씨의 후의는 어느 때까지든지 잊지 않으려 하며 또 멀리 제씨의 건강을 축하고 이 붓을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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