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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ncheon Digital Archives

춘천의 모범촌 송암리를 방문하고-강원지국 기자
등록번호
00008601
생산일자
1927.11.02
생산지역
춘천시
생산자
매일신보
수집처
미상
소장자
국립중앙도서관
내용
1927년11월02일(4면 1단) 도회의 가을은 소조(蕭條)하지마는 농촌의 그것은 풍요하기 짝이 없다. 문화라고 하는 말은 보편적 의미에 있어서 도회의 물질적 진화를 말하는 듯하나 기중의 산과 들을 지나 유연히 거좌한 농촌애 문화라는 말을 적용하게 된다 하면 어떤 의미로 보아 인류의 지고한 이상은 점점 접근해온다고 하지 않는가. 일총의 도수 한 평의 퇴비더미에도 문화가치가 잠재해 있다고 하면 아는 사람은 알아도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것이 ???멀리 서 “광이”를 쥐이(..........여백) 농부의 모양을 자연가운데 바라볼 때에 농촌생활은 일종의 시이고 노래고 또 화폭이 아니랴. 그러나 우리는 이 시고 노래고 또 회화적 생활중에 사회적 분배의 불공평함을 망각하지는 않는다. 생활에 피곤하야 눈동자는 암둔에 탁하고 그 안용은 몽매에 이완하야 색과 빛이 없는 그 모양이야말로 그 직접원인이 농촌생활에 있음은 결코 아니다. 분배의 불공평에 있다. 다시 말하면 지주의 횡포에 있다. 청등한 창공 아래 풍임한 산과 들을 지나 춘천군의 모범부락 신남면 송암리를 조산서무주임 이하 농회 기수 제군의 안내로 방문한 것은 어느 날 정오경이었다. 가을 농촌은 풍윤한 자연미에 두텁다. 황금 년과 같은 풍년에이랴. 기술원의 말을 들으니 금년은 예년에 비하야 3할증수요 작년에 비하여는 5할의 증수를 예상한다고 한다. 먼저 송암리 촌락인구에서 삼면의 야산에 싸인 동리를 들여다보았다. 그것은 틀림없는 저1전쟁영화의 서막에 나오는 “평화한 촌”그것이었다. “밀레1 ”회화재료인 농촌은 광막한 지평선에 그 생명이 있으나 송암리 모범부락의 풍락한 평화는 3면 중첩한 소산에 위요(圍繞)된 남향판의 안재에 그 생맥이 달렸다. 촌입구의 좌경에 3동 장방형으로 된 거대한 집이 있으니 그것은 그 부락의 장자 지규문씨 일가의 일본시찰기념의 양잠실이라 한다. 다시 들어가면 가로에 송암리청년단 게시판에 있고 게시판중앙에는 최신식 괘시계가 박혀 있다. 이러한 설비는 조선에는 물론 일본에도 전국에 2개소밖에는 없다는 것을 보면 매우 기발한 듯 감이 없지 않다. 동리 중잉고처에는 교회당겸 여자학당겸 청년단집회실을 겸한 양철집이 있고 그 정원에는 높이 종이 달렸다. 이것이 멀리서 보면 어디까지든지 평화한 느낌을 준다. 다시 주도한 안내로 촌가를 일일이 돌아본다. 먼저 이 촌에 들어와 사람으로 하여금 놀라게 하는 것은 퇴비사의 정돈이다. 그 다음 돈사, 양계장도 질서 정연하게 거의 가가호호에 있어 저 농가라 하면 난잡한 누항(陋巷)을 연상하게 하지마는 이곳은 조금도 그런 느낌이 없을 뿐 아니라 소위 문화주택이라는데 비하야 그 자연미가 풍부하다. 그 외의 설비로는 공동욕장4개소 공동작업장, 공동정3개소의 설치를 지금 진행중에 있다 하니 이 촌의 문화설비가 어떠한지를 알 것이다. 이와 같은 시설은 금춘에 들어있던 경쟁적 동기가 배태된 결과 일기가성적으로 독려?설인 것이라 한다. 이 단시일과 이 시설의 주도를 비해 볼 때 “기술원 제군의 정애의 정도를 상상하기에 넉넉라다”는 오산주임의 말이 타당한 듯싶다. 춘천군의 시설방침을 들으면 보통적 시설보다 집중적 방침으로 가능성 있는 촌락을 지정하야 성공해 가고 또 가는 것이라 하다. 하여간 녹야군수와 오산주임의 열심한 시설을 감사함과 동시에 그 부하인 기술원 제군의 불면불휴의 노력을 망각치는 않는다. 끝으로 차 모밤부락 형성에 당하야 군당국의 의사를 이해하고 다대한 공헌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 지규문씨 일가에게 군을 대신하야 감사를 드린다.(사진은 유지사 일행의 송암리 방문 광경) (춘천지국 기자 조준기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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