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조선모범면순례(全朝鮮模範面巡禮) (이구(二九))
- 등록번호
- 00008369
- 생산일자
- 1926.04.19
- 생산지역
- 춘천시
- 생산자
- 매일신보
- 수집처
- 미상
- 소장자
- 국립중앙도서관
-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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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04월19일(3면 3단) 춘천에 없지 못할 일세(一世)의 위장부(偉丈夫) 주호(酒豪)가 이동근(李東根) 씨의 공로 정3품 통정대부의 직명은 현대의 민중에게는 한 순사만치라도 권위나 명예를 가지지 못했다 그러나 세상에서는 이러한 견서(肩書)를 가지고도 의기양양한 자가 있는데야 분반(噴飯)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런데 하물며 무관 행사 관찰부 주사의 이력은 소개의 가치가 그다지 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저 위장부(偉丈夫) 이동근 군의 금일의 풍격을 양성한 과거의 용로였었기 때문에 전에 실었었다 저 금일의 통칭 이통천(李通川) 융희 원년에 통천군수를 피명한 데서 나왔다 한다 그런데 이통천 그 이름은 먼저 술 다음에 억센 의기를 연상케 하리만큼 술 잘 먹는 의기남아다 이태백이만큼 시를 잘 못해도 술은 먹는다는 것이 춘천의 일반 세평 … 사회운동을 대별(大別)하면 사상과 직접의 2대별할 수가 있는 듯하다 그러나 저 사람은 이 두 가지 중에 한 가지도 해당치 않는 사회의 유익한 인물이다 (사진) 물론 재력으로써 사회를 조장할 만한 재산가도 아니다 그저 그는 ????억센 의기???? 그것만으로 제안된 또는 채안(採案)된 의안을 충직하게 실행하는데 저 사람의 사회적 가치는 있는 것이다 지난 여름 강원도 대홍수 때에 임시 수재 구호반장은 저 사람의 적임인 동시에 그 활동은 저 사람의 풍속을 추상하는 웅변이었다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저 사람만 들어서면 아니 내려야 아니 낼 수 없는 기부 거기는 논리나 조리도 없다 논리나 조리없는데 이재민에게 대한 동정은 물론이다 단지 이통천만을 보아서 걷어 들인 금액이 빈약한 조선인 상업가에서만 수백 원이었다 우리는 이런 의미 이런 인물로 보아서 춘천서 없지 못할 만한 사회운동가라 한다 그리고 우리 조선인에게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다지 고맙다고는 할 수 없는 동척회사 설립도 별로 특기할 사실은 못 되나 저 사람이 금번 세상을 소동케 한 강원도청 방지운동 위원이 되어 1만 군중의 앞 단상에서 두 발을 울려가며 ????괘씸한 놈들 어디를 남의 도청을 옮겨가려고 괘씸한 놈들! 만일 우리 도청을 옮겨 가면 봉의산 신령님이 가만두시지 않으리라!????한 것은 현대 신식 청년의 귀에는 골계(滑稽)로 들리겠지마는 당시 까닭도 모르고 면장을 따라 7, 80리 밖에서 온 수천 면민 손님네들에게는 이 위에 없는 웅변이었다 이러해서 저 사람은 당년 57세의 처녀 연설에 성공했고 또 면민에게도 일생에 처음되는 박수법을 가르쳤다 요컨대 민중의 생활 형식이 추이됨은 사회문화의 진전인 증거다 이 의미로 보아 정3품 통정대부의 이동근은 폐물이나 하등의 공직이 없는 단순한 주호 이동근을 우리에게나 혹은 사회에 어찌 그런지 무엇인가 공익 있는 것만 같다 물론 현대의 사회는 청년의 소유다 또 그래야만 될 것이다 그러나 노년 그것은 폐물로 수기(睡棄)해야만 될 것일까? 한 사람이 노년에 이르기까지의 생애는 역경이나 순경을 물론하고 많은 인생의 노정도가 된다 인생의 거름이 앞서간 사람들의 암호에 안심되는 일이 없다고 할 수가 있을까? 인생의 광야는 험악하다 이 광원의 정가운데 섰을 때 인간은 고독과 전율을 느낀다 그때에 먼저 간 현명한 이의 발자취를 따르는 것은 천재 이외의 사람에게는 행복이 되지 않을까? 끝에 주호 쾌남아 이동근 군은 ????무관의 제왕????은 아니지마는 무관의 사회공적자로는 추천하고 싶다 술은 저 사람에게 대하여 노경(老境)의 위로자다 그리고 저 사람은 술의 진가를 가장 적확하게 발견한 1인일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왕년의 저 사람이 금주 동맹회 회원이었었다는 것은 역시 그의 성격의 일면을 증명하는 아름다운 애교가 아닐까 (사진은 이동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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