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01월06일(3면 2단) 춘천에서는 1월 1일 정오에 신년 교례회를 군청에서 개최한바 참집 인원은 군민 함께 약 300명에 달하여 자못 성회를 나타냈는데 이 석상에서 양원(椋原) 춘천면장은 발기인을 대표하여 신년의 예사(禮辭)가 있은 후 다음에 소서(小西) 내무부장의 발성으로 천황 황후 양 폐하 아울러 섭정 궁전하의 만세를 삼창한 후 소서 내무부장은 잉(仍)히 선각 양원 씨의 예사 중 도청이전문제가 12월의 도평의회에서 가결된 것은 유감이라 술함에 대하여 춘천의 재주(在住) 제군이 만약 이 문제를 중대하다 생각할진대 무슨 까닭으로 도평의회 폐회 후 1주일을 경과한 금일에 이르도록 도 간부에 대하여 일언의 질문과 상의가 없었는가 만약 이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중대한 문제로 취급할 것 같으면 밤이라도 급래하여 상의할 것이 아닌가 또 본 문제가 가령 도평의회에서 가결되었다 할지라도 이는 요컨대 교통의 불편에 의하여 일어난 운동인즉 우리는 관민일치 협력하여 우리의 지혜 상 기술과 열성에 의하여 경춘간의 교통을 충분히 완비케 하여 본 운동이 일어난 동기를 절멸하도록 상호 노력할 것이 아닌가 도 간부는 결코 이의 노력에 신명을 불석하려는 것이라는 의미의 열변을 토하고 만장 박수리에 산회하였더라 (춘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