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08월02일(5면 2단) 홍수 일과(一過) 후 춘천면 전평리의 죽전리 30여 호는 전부 유실되어 처참히 그 공허에는 갈매기 무리만 왕래할 뿐인데 이와 같이 불의지변의 혹화(酷禍)를 당한 참담한 200여 명의 이재민은 그간 구호반의 동정 하에 건견(乾繭)장에 수용되어 무사히 보호를 받다가 마침내 7월 27일 오후 2시에는 부득이 해방을 불면하게 되었다 할 수 없이 구호소를 떠나게 된 그네들은 방향 없이 서로 서로 손을 잡고 도로에 전전 방황할 수밖에 없게 되었는즉 실로 그의 정경이 가련하여 누구던지 동정의 눈물을 금하지 못할 것인데 이에 대하여 물론 자기의 의무이며 책임이라 할 것이로되 녹야(鹿野) 춘천군수의 노력과 부심함에 향하여는 감사의 뜻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죽전리 위치 존속 문제에 대하여 일반 여론도 분분하거니와 또 이재자 측으로도 다시 거주의 의향이 없는 고로 녹야 군수는 이 문제 해결에 비상히 고려 초심하였다 그 리는 연중 행사로 연연 출수 당시에 포위되어 풍림(風林) 좌조(坐鳥)의 격으로 이래고통을 느끼게 되던바 및 기타 전멸 이뿐의 금일을 보게 되었음으로 존폐문제가 일어나게 된 것이다 물론 존속할 수는 없다 500년래 미증유의 출수라 할지라도 사람으로 예측키 어려운 천위(天爲)로 어느때에 여하한 수재가 또 있을는지 위험과 불안을 포회(抱懷)케 될 것이니 이때에 이전함은 당연한데 또한 위치 선택 문제이다 이 존폐문제에 녹야 군수는 방문한 기자를 대하여 말하되 ????금번 홍수로 특히 춘천군 피해가 심다함은 참으로 통탄할 뿐이 아닌바 그 중 사망자가 그다지 많지 않음은 오히려 다행이라 하겠는데 장차 불의의 참상을 당한 저 많은 이재자의 수제선후책이야 실로 망연하외다 죽전리 존폐문제에 대하여는 이 기회에 될 수 있는 대로 안전지에 이전함은 당연한데 제1위치 문제이외다 그 리 이재자 측으로 국유지의 대차 또는 불하를 원하나 역시 이 부근에는 적당한 국유지도 없는데 전평리 엄주일(嚴柱日) 씨의 매불 계약에 이은 역둔토 800여 평이 적당함으로 교섭한 결과 5년 불(拂)에 대하여 매 평 70여 전을 요구하니 응하기 어렵고 동아(東亞)잠사(蠶絲) 후방 형무소 소유 토지가 있어 문의한 결과 상부에 교섭하려면 1개월의 시일을 요할지니 눈앞의 급무임에 기다릴 수 없고 또 춘천읍 입구 앞 형무소 사용 연와(鍊瓦)공장지를 임시 소사괘지(小舍掛地)로 희망하는데 이는 면소 소유지인즉 물론 차용할 수는 있으나 영구가 아니오 임시인바에 읍 입구에 소옥괘가 있음은 읍 체면상 불가하다 인정하는바 임시일 것 같으면 500년 내 초유의 대홍수인즉 몇 년 내 이와 같은 홍수가 다시 오지는 아니할지니 우선 전허(前墟)를 이용하고 종차 서서히 해결하는 외에 다른 길이 없고 소사(小舍) 괘(掛) 재목(材木)은 부근에 국유림은 물론 사유림도 적재(適材)가 없음으로 생각다 못하여 전평리 일대에 산재한 쌀 류를 무상으로 취득코자 교섭 중이며 구제선후책으로는 도(道)로 구휼금 하부와 일반의 동정금으로 소사 괘료와 식료비로 응분의 구조를 위하고 이후로는 도로 수선 기타 공사에 출역하여 각자 노력으로 생활을 영케 할 계획으로 각 청부업자에게 위탁하였노라고 비상히 추심 만면의 태로 답함을 봄에 이재민에 대하여 씨의 동정심이 풍부함과 구제책에 부심함과 노력함은 추찰하기 어렵지 않더라 (춘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