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년03월10일(3면 7단) 춘천의 줄다리기 싸움은 이미 게재한 바와 같이 결국 또 싸우게 되어 아래 우편에서는 각각 사무소까지 두고 소위 위원이라고 나서 각 편의 위원들은 불철주야하고 열심히 각 면 각 리로 사람을 파송한다 또는 면소나 구장에게 통지하여 군중을 동독하고 동리마다 동아줄을 부담시키며 일면으로는 기부금을 모집하여 각 5, 600원의 비용으로 춘천배판 후 제일 크게 시작된바 승부를 결할 날은 음력 지나간달 그믐날 공일을 택하여 ᄊᆞ우려한 것이 그만 그간에 날이 궂고 또는 미처 준비가 되지 못하여 일주일을 연기하여 지난 공일 음력 2월 초7일로 되었는데 싸움 전날은 장차 전지(戰地)가 될 전평리 너른 들에는 벌써 촌으로서 남녀노소의 구경꾼이 모여들기 시작하고 각 처로서 음식점 영업자들은 큰 수가 날 듯키 좌우로 벌가가 노점을 세우고 각각 음식을 준비하는 광경은 실로 장관이었으며 아침 8시부터 사방으로 모여드는 군중은 눈이 찬란하게 가장(假裝)을 하고 각각 동리마다 깃발을 들고 모여드는데 7, 80리 되는 원정을 불고하고 오는 것이 결국 사람바다를 이루고 상방 산봉우리는 각처로 모여든 남녀노소가 섞여서 각기 편을 다투어 앉은 사람은 산을 이루었으니 당일 모인 사람은 아마 적어도 3, 4만 명에 이르렀더라 병원으로는 구호반이 나오고 경찰서로서는 서장 이하 5, 60명의 경관대가 출동하여 경계하느라고 바쁘었으며 줄다리기 규칙적으로 시간을 정한바 오후 1시에 양편의 군중은 각각 5, 6천명씩 당합되어 동리마다 항오를 차려 기를 차례로 들고 각각 기점(期點)지로 줄을 끌고 모여드는데 줄의 기러기는 300간 가량이요 너미와 넓피는 평균 한 간이나 되게 묶은 큰 줄이었더라 이와 같이 하여 2시쯤 되어 공총소태로 양 편의 싸움을 겨루기 시작되었는데 한 번 두엇차 소태로 겨우 두 번 소리를 지르자 아래줄이 그만 끊어졌으매 제 줄 끊어진 줄 모르고 각각 끌고 닷는 형상은 실로 우습고도 가관이었다 이 승부의 결과는 상품으로 우승기를 이긴 편을 주었다는데 이번 양 편 줄의 값만 하여도 6, 700원의 달한 바인 것은 팔어서 춘천보통학교 우두(牛頭)야학회에 기부할 목적이라 하며 이날 다행한 것은 중상한 자는 없었으니 다수의 경상한 자는 불소하였고 심지어 주막 집까지 무너뜨렸었더라 (춘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