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수재(楊秀才)의 의옥(疑獄)
- 등록번호
- 00007639
- 생산일자
- 1920.08.16
- 생산지역
- 춘천시
- 생산자
- 매일신보
- 수집처
- 미상
- 소장자
- 국립중앙도서관
-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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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08월16일(1면 4단) 송당산인(松塘散人) ????기(寄)???? 지금으로부터 11년 전 즉 경술년 경에 내가 경성 융희학교에 다닐 때의 일이다 (내라함은 본기서(本寄書)를 지은 자를 이름이니 다음도 또한 같다) 나의 동료 중에 한 학생이 있으니 우리들은 항상 ????양 수재????라고 칭하고 매우 친절히 지냈는데 이 사람의 본명은 연국(延國)이라 하며 그 시골은 춘천군 신남면 삼천리(三川里)인데 재산이 매우 넉넉하여 남산외일작면(南山外一作面) 사내면(史內面) 동산면(東山面) 등지에 토지도 많이 있었다 그런데 양 수재가 입학하기는 나보다 1년이 일러서 나의 2년급 때에 양은 3년급을 다니는데 인물도 매우 잘나고 학문도 한문의 소양이 충분할 뿐 아니라 본시 선천적으로 자연의 취미가 깊은 사람이라 매 일요일이면 산명수려한 곳으로 다니면서 사생화를 그리기도 하며 매일 오후에 종로 기독교 청년회관 내 음악회에 다녀서 음악에는 점점 현묘한 지경에 이르렀음으로 그 강사로 있던 김인식 선생도 항상 탄복하였다 그런데 융희학교에는 교사간에 무슨 의사충돌로 인하여 불평이 일어남으로 마침내 생도들에게까지 큰 영향이 미쳐서 1주일동안은 매일 잘해야 한두 시간씩 상학(上學)하게 되었다교장선생은 이것을 깊이 우려하여 그 다음 공일(空日)에 화계사(華溪寺)로 원족(遠足) 명령을 하기로 정하고 학교 게시판에 게시를 걸고 동시에 생도를 강당에 모아놓고 원족할 준비를 시키는데 전 생도를 갑을병정 4조로 나눠 명일 이른 아침에 교문을 나서서 화계사까지 가는 동안에 갑조는 작문 을조는 도보경주 병조는 산술문제해석 정조는 시율(詩律) 또는 가곡을 짓기로 하였다 … 양 수재의 원족가(遠足歌)는 천고 명작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될 만한 미문(美文)의 가곡인데 당시에 이 가곡을 쓴 잡기진(雜記帪) 어찌 후일에 대옥사(大獄事)가 정로(錠露)될 장본물인 줄을 누가 생각하리요 슬프도다 양 수재여 그 후 얼마 아니되어 비명횡사할 줄 어찌 알았으리오 만일 이 잡기진 없었더면 그 참혹히 비명한 죽음한 것을 이 세상에서 영영히 알지 못하게 되었으리로다 ????미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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