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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ncheon Digital Archives

도장관이 지계지고 석재를 운반; 강원도장관 이규완씨의 근검과 영식 선길군이 경영하는 과수원
등록번호
00007354
생산일자
1917.05.16
생산지역
춘천시
생산자
매일신보
수집처
미상
소장자
국립중앙도서관
내용
1917년05월16일(3면 4단) 푸른 물을 드린 듯한 춘천 봉의산「鳳儀山」을 내려와 4, 500보를 향하여 후평리「後坪里」에 다다러서는 조금 높은 언덕에 요사히 임금과 복사꽃이 만발하여 맑은 향기를 봄바람으로 사방에 전한다 이 과수원에는 공일에도 놀지 아니하고 언제든지 다 갈색의 노동복 입은 2명의 청년이 흑소를 몰며 혹 지게를 등에 지고 분주히 돌아다니며 과수재배에 전력을 다 드린다 이 사람은 누구인가 하면 현금 강원도 도장관의 큰아들 각일「覺一」이 21세와 둘째 아들「鮮吉」 20세의 두 청년이라 그 두 청년의 활동하는 모양은 항상 행인으로 하여금 다리를 멈추게 하며 게으른 자로 하여금 스스로 용기가 나게 한다 5월 6일 일요 오후 2시에 이 과수원을 방문한 즉 새로히 설비하는 저근 양어장「養魚場」가에는 도장관이 손수 지게를 지고 물을 옮기다가 「아아 우리 아들놈의 과수원을 구경하러 오셨소」하며 둘째 아들 선길 군을 불러 원 내를 안내하게 한다 그 두 청년의 손으로 해마다 개간된 과수원은 대략 만여 평이오 그 안에는 임금, 배, 포도, 복사 등속을 2천 주씩 배치하여 매우 주밀한 방법으로 가꾸어준다 작년에는 한 주에 임금이 700개가 열린 것도 있다하며 꽃홍여 같은 속으로 행하며 본즉 병수의 예방이라던지 해충의 구제방법이라던지 모두 완전히 되어 한 곳도 미비한 것이 없으며 매년 수확을 들은 즉 1915년(대정4)에는 300원 5년은 600원 금년은 적어도 1000원은 넘으리라 하며 그중에서 3분의 1은 사업확장비로 떨고 남저지전부는 자손교육비로 꼭꼭 은행에 임치한다 사업도 점점 늘어 이제는 양어장까지 되었더라 큰아들 각일 씨는 뢰병으로 인하여 농업학교를 중도에 퇴학하였고 선길 군은 일본사람보다도 잘하는 일본말로 춘천농업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하고 항상 집석이감발로 노동에 종사하여 형의 대신 총사령관이 되었더라 과수 사이에는 아름다운 닭들이 사이좋게 놀고 있고 저편 풀언덕에는 검은 염소 게을리 하품하며 누른 눈을 굴리고 앉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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