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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ncheon Digital Archives

춘천춘일춘고유(春川春日春皐遊); 백작이완용씨감상(伯爵李完用氏感想)
등록번호
00007201
생산일자
1915.06.02
생산지역
춘천시
생산자
매일신보
수집처
미상
소장자
국립중앙도서관
내용
1915년06월02일(1면 4단) 춘천 이야기를 하라 참 비각적(飛脚的) 시찰로 자동차 위에서 왕복하였으니까 이야기 재료가 있어야지 춘천은 나의 종조(從祖)가 다년 부사(府使)로 있으신 고로 그때부터 귀에 졌도록 듣기만 하던 터이니까 가히 그 말을 듣기만 하고 그 땅을 보지는 못했으나 춘천의 금일 발전이 아무리 금석지감(今昔之感)이 있다한들 신구(新舊)의 비교를 할 수가 있소하나 강원도라 하면 그 도의 전 면적 3분의 2는 산지라하여 혹자는 태반 불모의 땅으로 알고 춘천의 성가(聲價)를 너무 염(廉)하게 생각하니 나는 그 성가에 대하여서나 나의 자신하는 바를 말할까 하오 대저 강원도는 산지가 많고 평탄한 곳이 적으며 지질이 비옥치 못하다 하나 타도에 비하여 독특한 특색을 들어보면 하천이 적지 않음으로 수리의 편(便)이 있고 산천이 명미(明媚)하여 거주지에 적당하다함은 나의 과찬하는 주장이 아니라 일반 전문기술가의 정평도 있는 고로 연전(年前)에 춘천에 저명한 그 우두평(牛頭坪)에 전 면적이 1,000여 정보나 되는 원야(原野)를 개척코자하다가 그때 실지 조사로 파송하였던 기사의 보고가 그 지면의 고저(高低)를 따라 개간하면 답작(畓作)이 200정보 내외에 불과하다하기에 예산에 불합한 점이 있어서 그 사업을 중지는 하였으나 춘천은 세인이 염가로 치는 불모의 땅은 결코 아니오 금번 관광으로 말하면 그 우두평을 기간(其間) 내지인 모(某)가 착수하였다 하기에 나는 이를 시찰키 위하야 동지 박영효(朴泳孝) 후(候), 윤택영(尹澤榮) 후(候), 박제순(朴齊純) 자(子), 민내석(閔內奭) 자(子), 윤덕영(尹德榮) 자(子), 민영기(閔泳綺) 남(男), 국분(國分) 사무관 등의 동의를 얻어 발기하였더니 의외에 도장관(道長官)은 10리나 나와 우리 일행을 맞고 기타 일선(日鮮) 관민의 환영을 받고 그날로 귀경하였는데 나의 특별한 감상으로는 도청 내에 진열장을 본즉 타도에 비하면 미곡과 기타의 개량종이 유감없이 보급됨과 임업의 발달이 현저하여 불원한 장래에 그 면목을 가히 일신하겠으니 이는 필시 그 관민이 협심노력함에 불외(不外)함이라 나는 이를 충심(衷心)으로 흔희(欣喜)함을 마지 아니하였노라 이때 백작은 친히 일기책을 탁자로부터 인출(引出)하여 기자에게 보이면서 왈 「윤(尹) 자작이 도중(途中)에서 구점(口占)한 것을 졸지에 내밀면서 차운(次韻)을 하라고 강청(强請)을 하기에 나는 도선(渡船) 중에서 참 졸작(猝作)을 하였는 걸」 하며 화제를난 타(他)에 전입하고 그 시는 자작 윤덕영 차행시사재강류(此行詩思在江流) 이백정위반일유(二白程爲半日遊) 징벽도수공인영(澄碧到水共人影) 삼거전격호쟁두(三車電擊互爭頭) 백작 이완용 행동여차호풍류(幸同如此好風流) 춘천춘일춘고유(春川春日春皐遊) 다사장관지후의(多謝長官之厚誼) 하노십리도강두(何勞十里到江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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