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5년05월16일(3면 2단) ▲ 춘천의 연혁을 온(溫)컨대 지금을 거(距)하기 2천여 년 전은 맥(貊)의 도(都)였으나 강원도를 설치한 후는 도청은 원주에 있었던 것을 일청(日淸)전쟁 후에 한국의 독립국된 일이 천명된 고로 각도를 남북 양도(兩道)에 나눌 때에 강원도도 또한 남북 2도에 나누어져 강원남도는 종전과 같이 원주에 북도는 강릉에 설치하여 영동 9군 즉 울진, 삼척, 강릉, 양양, 간성, 고성, 통천, 흡곡(歙谷)과 울릉(欝陵)의 연해(沿海) 각 군을 관할하기로결정되었더니 1897년(명치30)의 남북도를 폐하여 1도로 하고 동시에 도청을 춘천에 설치하였더라. 현재의 수비대 병사(兵舍)는 관찰도(觀察道)의 청사(廳舍)를 이용한 것이오 또 작년의 도청 청사는 원래 이궁(離宮)이라. 이궁은 지금으로부터 30년 이전 즉 도(道) 설치 이전부터 설치되었던 것이며 다시 고문(顧問)정치 시대의 재무서(財務署)는 현 군청에 이용되었더라. 내지인이 춘천에 들어옴은 재무서 시대라. 이와 같은 역사가 있는 춘천의 위치는 여하(如何) 우두(牛頭) 평야를 공(控)하며 봉의산(鳳儀山)의 남쪽에 있으며 한강은 그 서쪽 약 100리의 땅에 있고 금강산에서 나오는 화천강(華川江)과 인제 지방에서 오는 소양강이 합류되는 합류지점 부근에는 약 1.000 정보의 평야가 있어서 평야의 중앙에 우두산(牛頭山)이 올립(兀立)하며 산 위에 고분은 소잔남존(素盞男尊, 스사노오)의 유적, 증지무리(曾志茂利, 소시모리)라는 설이 있더라. 관야(關野) 박사와 기타 학자 간에는 전연(全然) 부정되었으나 민간에는 유전(流傳)되어 지금 그 땅에는 소형 화표(華表)까지 건설되었더라. 평야의 4주(周)는 삼악산(三嶽山), 백악산(白岳山) 등의 고봉(高峯)이 환상(環狀)으로 연긍(連亙)하여 완연히 거대한 嘳火口 중에 있는 관(觀)이 있고 또 산은 경성 부근과 같이 살풍경(殺風景)의 화강암 지질이며 치수(稚樹), 상록수의 점점(點點) 밀생(密生)하여 풍치의 가관(可觀)할 것이 있고 읍내의 가옥은 대부분 조선가옥이며 도청, 군청, 경찰서, 수비제(守備際), 물산 진열소는 일단(一團)을 이루어 산의 중앙에 있으며 소소(少少) 격리된 춘천 분감(分監)은 최고부(最高部)에 외립(巍立)하고 일일(一一) 시중(市中)을 관적(貫迪)한 본(本) 가도(街道)에는 우편국, 금융조합, 한호농은(漢湖農銀) 지점, 재판소 등이 병립하였으며 자혜의원(慈惠醫院)은 시가(市街) 일우(一隅)의 고구(高丘) 상에 있으며 학교, 보통학교도 또 산 위에 있더라. 총(總)히 건물이 모두 산 위에 있음은 타(他)에서 보지 못하는 바이며 보통 춘천이라 칭하는 읍내의 호구(戶口)는 내지인 호수(戶數) 296호 인구 남 520 여 406 계 926인 선인(鮮人) 643호 남 1,328 여 1,162 계 2,490인이 있으며 이 등의 직업별은 내지인에 있어서는 관공리(官公吏)가 가장 많아 10분의 5를 점하고 상업공업이 그 다음이며 선인 측은 농업 상업 관공리의 순서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