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06월16일(3면 2단) 강원도 춘천군 신북면 옥산포 (新北面 玉山浦) 5통 7호에 사는 오소사(吳召史) 34살 된 여인은 16살 되었을 때 박봉진(朴奉鎭)에게 출가하여 부부화락으로 온 많은 가정을 일구어 오다가 23상에 이르러 불행히 남편이 병에 걸려 약○에 효험을 이루지 못하매 즉시 손가락을 끊어 흐르는 피로써 그 남편의 입에 넣었으나 천명이 이미 다한지라 어찌 살기를 바라리오 본래 그 집의 출가한 이래로 덕스럽고 어진 천품으로 구고 봉양과 봉제 접객을 예로써 극진히 행하매 향당이 모두 효부(孝婦)라 일컫던 바 중년에 그 남편을 영결한 후 만사가 한결같음으로 이 소문이 총독부에 들려 효부열녀로 포장하기 위하여 포상장과 및 상여금 10원을 주어 평생에 열행을 비상히 칭찬한 사실이 있더라. 박명한 오소사의 비운 그러나 전실 부인의 아들 준직(準直)이가 불효막심하여 그 계모를 불쌍히 생각지 않고 날로 구박과 학대가 심하여 매운 절개의 농상고절을 지켜오는 오소사의 가슴에는 항상 슬픈 마음과 원통한 설움이 서리고 서려 눈물로 벗을 삼고 한숨으로 짝을 지어 무정한 세월을 허송하던 바 금년 5월 경에 오소사의 소생 아들 되는 준상(準祥)이까지 미워하여 날로 때리기와 학대가 심함으로 그 혹독한 매와 구박을 견디기 어려워 준식은 즉시 몸을 피하여 서울로 올라온 후 또한 그 계모까지 쫓아낸 바 되어 슬픈 울음이 구소에 사무친다 밖을 나서보니 앞산이 막막하고 산천 초목이 다 설어하는 듯 슬픈 눈물이 앞을 가려 흑흑 흐느껴가며 하늘을 부르짖어 통곡할 제 어느 누가 동정을 표하지 않으리오 슬프다 오소사의 가련한 정경이여 전생의 무슨 팔자로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이와 같은 호원을 당하는지 가엽다 오소사여 그 길로 몸은 길거리로 떠다니게 되어 주야풍찬노숙으로 팔자한탄을 하며 그 불표자식의 회심키를 은근히 하늘게 기도하던 터이라 법률이 밝은 이시대에 어찌 이와 같은 불효자가 세상 가운데 온전히 서있기를 바라리오 그 고을 헌병분견소에 그 소문이 들려 즉시 그 자를 불러다 취조한즉 오소사의 전도가 더욱 창망 그 자는 좋은 말로써 꾸며 대답함으로 아직까지도 의심이 가득하여 행동을 시찰하는 중인데 그자의 부친이 이 세상을 하직할 때 논 닷섬 한말과 밭 열홈가리를 전기 오소사의 친생자 준상의 것으로 분재(分財)한 일을 원근 가족과 기타 백여 호 동리가 모두 아는 바인데 그자는 선부의 금석 같은 유언을 좇지 않고 자기 임의로 팔아서 모두 방탕에 소비한 일이 있다고 듣는 사람마다 무수타매오 보는자마다 극구질욕한다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