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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ncheon Digital Archives

이소응 초상화
등록번호
00023836
생산일자
2019.03.01
생산지역
미상
생산자
신대엽
수집처
의암류인석기념관
소장자
의암류인석기념관
내용
이 초상화는 춘천문화원 의암류인석기념관에서 2019년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국가보훈처로부터 서훈을 받은 독립유공자(의병) 19명을 선정하여 춘천 거주 신대엽 화백이 전통방식으로 그린 것이다. 
이소응李昭應

-생몰년도: 1852.08.07.~1930.03.25.
-운동계열: 의병
-포상년도: 1962
-훈격: 단장(독립장)
강원도 춘천 출신으로 본은 전주이며 유학에 조예가 깊어 일반의 추앙을 받아 왔다. 1895년 을미사변이 발발하고 단발령이 시행되자 이러한 일제의 만행과 내정간섭을 규탄하여 전국에서 유생들이 중심이 되어 의병운동이 전개되었다. 1896년 1월 20일 류중락·이만응 등을 중심으로 한 선비와 백성들 천여 명이 춘천부에 모여 습재 이소응을 대장으로 추대하였다. 이소응은 대장으로 추대되자 격문을 지어 8도에 보내어 인심을 격동시키고 함께 거사하여 적을 토벌할 것을 호소하니 원근의 인심이 크게 분발하였다.뿐만 아니라 정부에서는 조인승을 춘천부 관찰사 겸 선유사로 보내어 도착하였는데 의진에서는 조인승이 원수의 역적들과 같은 무리라고 하여 잡아다 참형을 시행하였다. 이것은 개화파의 관원으로서 의병들에게 처형당한 첫 예가 되었다.그런데 초기에 크게 기세를 올렸던 춘천 지방의 의병 세력은 그것이 대개 선비 중심의 봉기이었으므로 전술·전략에 익숙하지 못하였다. 또한 성중城中에서 다시 관군과 내통하는 자가 생김에 따라 차츰 성내 인심이 흩어져 의진의 형세를 지탱하기도 어렵게 되어갔다. 이에 이소응은 병력을 증강하여 위하여 몸소 지평 군수 맹영재를 찾아가 협상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제천의 의암 류인석의 의진으로 입진하였다. 이소응은 의암을 따라 만주 봉천으로 망명하였다가 이역에서 순국하였다 한다. 이소응은 춘천의 의병운동과 의암 의진의 활동 상황을 기록하여 「습재연보」, 「습재선생문집」 등의 저서를 남기기도 하였는데 이는 독립운동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서 활용되고 있다.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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