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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순 가사집, 자서전
- 등록번호
- 00023586
- 생산일자
- 미상
- 생산지역
- 미상
- 생산자
- 윤희순
- 수집처
- 의암류인석기념관
- 소장자
- 의암류인석기념관
- 내용
-
한말 최초의 여성의병장 윤희순의사의 의병가사와 자서전 복제본이다. 윤희순 의사는1860년 서울에서 출생하여16세에 강원도 춘천시 남면 발산리 항골에 거주하는 류제원과 결혼하여 춘천으로 이거 하였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일어나고 단발령이 내려지자 일제의 침략과 내정간섭에 항거하여 전국 각지에서 항일구국운동이 전개되었다.윤희순 의사는 시아버지 류홍석이 춘천의병으로 출정하자 자신도 적극적으로 의병을 돕기 위해 마을 부녀자들과 군량을 지원하고,「안사람 의병가」,「병정의 노래」등을 지어 의병의 사기를 진작시켰다. 1907년 정미의병의 의거하자 윤희순 의사는 군자금을 모아 의병을 돕는 한편,화약과 탄환을 만들거나 군사훈련에 동참하는 등 적극적으로 항일 의병항쟁에 참여하였다. 1910년 나라가 일제에 병탄 되자 윤희순 의사의 가족은 중국 서간도로 이주하여 국권 회복을 위한 노력을 지속하였다.특히 동창학교 분교인 노학당(老學堂)을 설립하여50여 명의 항일 투쟁 인재를 양성하였고,중국 일대에 흩어진 동지들을 모아 조선독립단 및 가족부대를 조직하여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다. 1935년 아들 류돈상이 일제에 체포되어 고문으로 순국하자 윤희순 의사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76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이후 아들,손자 등이 선대의 유훈을 이어1945년8월15일 광복될 때까지4대에 걸쳐60여 년을 국가와 민족을 위한 항일 투쟁에 헌신하였다. <글: 춘천학연구소 학예연구사 김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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