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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ncheon Digital Archives

춘천 소양교 오늘 성대한 낙성식 축하회, 다년의 불편도 해소,
등록번호
00014919
생산일자
1933.12.16
생산지역
춘천시
생산자
부산일보
수집처
미상
소장자
국립중앙도서관
내용
산업 교통상 공헌이 크다
【춘천(春川)】 춘천의 뒷문으로서 가장 중요한 동부 화천, 김화 방면을 연결하는 소양교가 11월 30일 준공을 이루어 16일 오후 1시부터 장엄한 준공식과 성대한 낙성 축하회를 개최했다. 준공식장은 소양교에서 거행했다. 오전 11시부터 내빈은 자동차로 오고 다리 근처(橋頭) 광장에 제단을 설치해 오카사키(岡崎) 사장(社掌)*에 의해 수불식(修祓式)*을 거행하고 도지사 야마나카(山中) 기성회장 공사감독 주임 및 청부 가시마(鹿島) 조(組)의 주임 그 외 주요 내빈의 타마구시(玉串)* 헌상을 마치고 장엄 성대한 도교식(渡橋式)을 실시했다. 당일 참석자는 군내 원근(遠近) 면에서 모이고 다리 위는 물론 양 기슭을 메워 미증유의 혼잡을 이루었다. 그러고 나서 일반의 식(式) 및 축하회를 위해 자동차를 달려서 공회당 식장에 참석했다. 야마나카 기성회장의 개회 인사 및 공사 보고, 도지사의 식사(式辭) 및 고사(告辭), 내빈의 축사 및 축전의 피로연 등을 마치고 야마나카 기성회장의 인사 축화회로 어어졌다. 접대 역할을 공직자와 내선 미기(美妓) 40명이 총동원 서비스로 일동 열광하고 스테이지에는 야마나카, 오카사키 두 사람의 열성적인 연습에 의한 낙성 축하회의 손동작 춤과 노래에 일동 완전히 매료되고 탄성과 박수는 끊이지 않고 그 외 여흥도 많이 있어서 대단히 성대했다.
소양강은 수 100년 전부터 도선에 의해 간신히 교통 연결을 유지했다. 동계와 하계는 자주 두절하는 일이 많다. 그리고 위험을 느끼는 일도 매우 많고 도선의 너무 느리는 등 그 불편과 일반 경제·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극히 컸다. 그것을 대대로 관찰사 시대부터 오늘에 이르는 지사에게 공수방관(拱手傍觀) 또는 무력이라고 해야 할까 어떤 시설도 하지 않고 지방민도 망연(呆然)해서 이것의 실현은 곤란하다고 오히려 단정했던 것이 다행스럽게도 궁민 구제 사업에 발상하여 현 지사 이범익(李範益) 씨 가설(架設)에 결단(영단,英斷)을 하고 거기에 제 7회 도평의회에서 지역 의원 야마나카 유타로(山中友太郞) 씨의 정성 어린 제안에 각 위원도 일제히 찬성하여 오늘날의 실현을 보게 되었다. 이 실현은 경이로운 가치에 의해 얼마 전 준공한 신연 철교와 현재 반 정도 공사한 모진교의 낙성과 연이어 경성 오리진선 2등 도로의 완비를 고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중추에 있는 춘천은 종래의 교통 불안을 일절 제거하고 실로 도치(道治)의 중심지로서 더욱 번영하여 확장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 없다. 총공사비는 지역민 기부 20,000원, 국비보조금 161,392원 합계 181,392원으로 지역민의 기부는 기성회를 조직하고 야마나카 번영회장을 회장으로 추천하여 이후 열성적으로 분주하고 지역민의 열의와 함께 오늘의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공사가 대단히 곤란해서 가시마 조의 희생도 컸다고 들었다
교량의 구조
다리 길이 397m, 총넓이 6m 유효 넓이 5m 50, 교대(橋臺) 중력식 콘크리트 구조 2기(基), 교각 중력식 콘크리트 구조 12각(脚), 교체 상판 철근 콘크리트 구조 게르바식 철형(鐵桁) 2개 통과하고 고○ 철근 콘크리트를 붙여서 도로 연장 1,715m
기공(起工) 쇼와 7년(1932년) 7월 5일
(사진은 소양교 오른쪽부터 이(李) 지사, 미우라(三浦) 토목과장 야마나카 기성회장이다)

사장(社掌)* : 신직(神職)의 직명. 부현사(府縣社)·향사(鄕社)에서 사사(社司) 아래 속하고 촌사(村社)·무격사(無格社)에서는 제사(祭祀)를 맡아 서무를 관리한다.
수불식(修祓式)* : 신도에서 목욕재계(齋戒)하는 일
타마구시(玉串)* : 비쭈기나무 가지에 베 또는 종이 오리를 달아서 신전에 바치는 것
사용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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