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春川)】 춘천은 요즘 2, 3년 현저하게 발전하고 있다. 작년 12월 공회당의 건축을 시초로 자동차회사 설립, 제사(製糸) 회사의 설립, 영림서(營林署), 거기에 현재 건축 중인 활동사진 상설관처럼 춘천 발전은 점차 늘고 있다. 내년은 면사무소 앞 매립지도 상당 이용될 거라고 생각된다. 최근 3년간 신축 가옥을 보면, 쇼와 3년(1928년) 48호, 4년(1929년) 45호, 올해 들어 이미 45호에 이르고 있다. 합계 138호 증가이다. 이외 공회당, 영림서, 제사 회사와 같이 공적 및 회사 방면 건물을 포함하면 140호 이상에 이르고 있다. 또 건물 양식도 문화적 경향의 것이 생기고 있다. 순사 강습소 구내의 고등보통교 교유(敎諭)의 순문화(純文化)식 건물을 필두로 반(半) 문화식 건물은 작년 12월 이래 톱을 차지하고 있다. 춘천 인사(人士)가 재래(在來)라고도 아니고 새 얼굴(新顔)도 아니라, 춘천에 안주하고 영주성(永住性)을 갖기 시작한다. 도평의원 산중(山中) 씨가 바로 그 역설자(力說者)이다. 그는 춘천을 분묘(墳墓)의 땅으로 정하고 있다고 말을 한 적도 있지만, 그의 말처럼 오랫동안 춘천에 있으면서 자연히 죽을 때는 조선에서는 죽고 싶지 않다 자신은 일본(내지)에서 죽고 싶다는 등을 말하던 시대는 지났다. 단연(斷然) 춘천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그대로 안치할 오랜 춘천이 되었다. 일본인(내지인)이 부초와 같이 조선을 경회(經廻)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가고 있다. 그래서는 문화인으로서 조선 동포를 지도하는 일은 할 수 없다. 조선을 여행 장소처럼 생각해서는 조선의 문화도 또 개인의 안정도 불가능하고 통치하는데 있어서도 장애가 된다. 이런 의미에서 춘천이 도소재지로서 유리한 지리적 조건을 차지한다. 춘천 인사는 모두 분묘의 땅이라 정하고 춘천의 발전을 도모해야 하는 것을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