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서 유명한 모범농촌 구로쓰치촌(黑土村), 이와 같이 하여 발전했다. 춘천시찰단이 시찰하고 감동받다
등록번호
00014241
생산일자
1927.06.29
생산지역
춘천시
생산자
부산일보
수집처
미상
소장자
국립중앙도서관
내용
이와같이 하여 발전했다. 춘천시찰단이 시찰하고 감동받다
【춘천(春川)】 기보(旣報) 본사 주최 춘천군 후원 군내 면장 독농가로 조직한 일행 12명은 기타큐슈(북구주,北九州)의 문화 및 후쿠오카현(福岡顯) 지쿠조군(築上郡) 구로쓰치촌의 전국 굴지의 모범 농가 및 선내(鮮內) 농사의 주요한 토지를 시찰했다. 예정대로 귀선(歸鮮)한 일행은 일본(내지)의 풍정(風情)이 다름과 문화의 정도가 현저하게 현격(懸隔)한 점에 모두 경이와 감동과 호기심을 느꼈다. 동시에 유쾌하게 시찰한 것은 가장 다행이었다. 지금 시찰의 보도(報道)에 빠진 개략(槪略)과 구로쓰치촌의 종합적인 상태(촌세,村勢)에 대해서 일반 농촌의 참고를 위해 작성해 본다.
전국 굴지의 모범 농촌 후쿠오카현 지쿠조군
구로쓰치촌을 시찰하는 것이 일행의 커다란 목적이었다. 그곳은 오구라(小倉)를 지나 같은 군 우노지마(宇島)역에 내려 동소(同所)에서 우노시마 경유해 약 30분에 도착한다. 그곳은 평탄한 거의 수전(水田)으로 둘러싸인 순연(純然)한 농촌으로 숙박 음식점 등이 절대적이고 그 외 유흥 오락적 기관이 없는 완전히 근로를 존중하는 전형적인 농촌이다. 호수 520호 인구 3,000명을 가진 남북 1리(里) 동서 20정(町)인 형태의 땅이다. 수전 310정 여, 밭 32정 1반(反) 여를 가진다. 또 다른 마을에 소요하는 수전 63정. 6반 여, 밭 11정 2반 여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주로 부동산 두 가지 점을 열거한 것으로 그 외는 생략한다. 또 기본 재산 81,600여 원을 가지고, 촌세(村稅) 19,000여 원은 기본 재산 2만원에 달하는 촌민은 주축이 되는 이유이다. 몇 해 입, 예산을 들면 다음과 같다. 세입 22,815원, 세출 동액(同額)
교육단체
소학교 1, 보습학교 1, 생도 합계 602명, 경비 합계 11,700원 도서관 1, 자치회 1, 재향군인회 1, 청년회 1, 부인회 1, 처녀회 1, 학생회 1
생산물
(농산) 쌀 7천 4석, 25만8천2백31원, 보리 5천8백84석, 10만8천2백 39원, 양잠 9천160관(貫), 9만8백52원, 그 외 7만여 원 가축 2만천 8백23원, 공비(公費) 2만8천3백7원.
위생기관
위생조합 15, 전염병원 1, 화장장 1, 의사 4, 산파 1, 치과의 1, 수의 2.
이상의 상황으로 동촌(同村)이 모범 농가로서 성공했다. 이미 내무 대신으로부터 표창을 받았고, 그 외 단체가 현(顯) 및 문부대신 등으로부터 표창을 받은 일도 여러번이다. 이유는 원래 동촌은 관개(灌漑)가 좋지 않아서 매년 가뭄(한발,旱魃)이 심해 농민의 고통은 쉽지 않았던 참에, 다카하시(高橋)라는 독농가가 자신이 토지 15정보(町步)를 담보로 자금을 얻고 이것으로 수면지(水面池) 8정보 정도의 저수지를 설치 그는 성공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희생도 멈추지 않고 심신에 전력을 기울여 연못(저수지) 성공을 이루 결과 지금에는 300정보로 관개했다. 또 3개 마을에 여택(餘澤)을 미치어 현재
600정보 이상의 관개를 이루었다. 이래 농민은 회생(回生)을 생각하고 또 합의에 의해 부업을 번성하게 해 양잠 및 가마니 제조를 여가가 있을 때마다 한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12~13세 아동이라도 하루 2원 정도 수입을 얻고 있는 식으로 야간은 오전 2시까지 가마니 제조에 노인이나 아이도 돕고, 업자나 관리도 가족이 즐길 수 있는 것이 역시 가마니 짜기라고 하고 전 호(全戶) 모두가 일하게 된 것이다. 또 당시 촌장 야바타 코타로우(矢幡小太郞)라는 사람이 있어 그는 70명에 의해 관선 호장(戶長) 겸 촌장이 되어 대정 12년(1923년) 4월까지 실로 40년간 근속했다. 대단히 촌민을 독려하고 질실(質實) 강건한 사람이었다. 이 사람은 모든 규칙이나 이치로 하여 사람을 꾸짖지 않고 교육적으로 촌민을 인도하고 관청은 인민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 장소라고 해서 휴일도 일요일도 없는 식으로 근무해 인민의 의뢰는 무슨 일이든지 해준다. 편지도 써 준다고 하고 털끝만큼도 수고를 아끼지 않고 빨리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에 촌민 일반은 신처럼 믿고 대단하게 오늘날의
모범농촌으로 공헌한 바가 위대한 사람이다. 향년 70에 사망해 훈(勳) 6등을 수여한 명예로운 촌장이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