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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ncheon Digital Archives

강릉의 상인 마을과 춘천의 관리(역인,役人) 마을 춘천지국의 한 기자
등록번호
00014199
생산일자
1926.11.22
생산지역
춘천시
생산자
부산일보
수집처
미상
소장자
국립중앙도서관
내용
춘천지국의 한 기자
이번 춘천 인사가 강릉의 물산품을 참관한 것과 강릉 소위 영동의 일부를 시찰한 것은 가장 의의가 있었다. 또 강릉 인사에 대해서도 호감을 품게 된 것을 추지(推知)한다. 품평회의 설비는 이시다(石田) 군수가 열심히 한 것과 충실한 카스야(粕谷) 서무주임이 보좌해서 완비할 수 있었다. 17일 최종의 미를 거두고 순조롭게 폐회한 것은 경사스럽기 그지없다. 강릉은 일본(내지)인 118호 594명, 조선인 5,515호 10,554명을 가진 중위(中位) 도회(都會)이다. 일본(내지)인 3할은 관공리로 7할을 지방민으로 보면 큰 차이 없다고 생각된다. 이것을 춘천과 비교하면 완전 정반대의 현상이라 생각할 수 있다. 이에 우선 토지의 발전은 소위 샐러리맨이 주라고 하는 것이 옳을지 그렇지 않다고 해야 옳을지 이것은 한 마디로 결론지을 수 없다. 관공리의 봉급으로 상대의 다수가 생활하는 것도 어떤 의미에서 발전이라 할 수 있지만, 이것은 보수주의(保守主義)의 발전이고 장래 나아갈 바의 발전은 아니다. 따라서 강릉은 관공리의 주머니 상대가 아니라, 소위 천혜의 선물이라 할 만한 물산의 산지이다. 쌀이 외부에 나가는 것, 해산물을 수출하는 것, 감의 산출 등을 주로 해서 이들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진정한 발전의 땅이라고 할 만하다. 그 토지의 발전은 토지의 산물에 의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발달을 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의미에서 강릉은 상인 마을, 춘천은 관리 마을이라는 것이 가능하다. 춘천 인사는 이번 시찰에 의해 크게 피아(彼我) 연구를 분기(奮起)했다. 그래서 취사(取)해서 좋은 것을 얻고 장래의 춘천에 의미를 두고 발전을 도모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미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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