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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ncheon Digital Archives

춘천의 저금 강연
등록번호
00014124
생산일자
1926.03.24
생산지역
춘천시
생산자
부산일보
수집처
미상
소장자
국립중앙도서관
내용
호사카(保坂) 국장 열변을 발휘하다.
【춘천(春川)】 기보(旣報) = 50,000원 가산(家産) 늘리기(증성,增成) 저금 선전 강연은 15일 오후 4시 30분부터 춘천 경찰서 도장(道場)에서 개최했다. 마당의 현관에서 춘천국원이 선전 전단(삐라) 및 팸플릿 저금 명세서를 배부하고 일동 착석하자 에다(江田) 춘천 우편국장의 인사 소개가 있다. 호사카 부사무관은 시종 싱글벙글한 얼굴이고
일본인은 저축하는 마음이 부족합니다. 이것은 그 이유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시대 백성은 죽지 않을 만큼만 하고 풍족하게 하지 마라.라는 말이 소위 백 가지 조항 속에 있습니다. 또 에도에서는 그날 번 돈은 그날 다 써버린다는 식으로 오히려 돈을 저축하지 않는 것이 결백하게 사는 국민성인 것처럼 생각되었습니다. 니노미야 손토쿠(二宮尊德)*처럼 근검을 힘써 행한 사람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저축심이 결핍한 국민입니다. 이런 상태로 가면 나라를 풍족하게 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합니다. 모처럼 손에 쥔 돈은 모두 없애버려서는 안 됩니다. 현재 세계 각국에서 미국은 돈이 풍부하다고 하는데, 이것은 우연히 부자가 된 것은 아닙니다. 일찍이 알래스카를 미국이 요구했을 때 많은 금광으로, 흡사 일본이 구주(歐洲) 전쟁 직후처럼 돈을 벌 수 있어서 갑자기 사치스러워져 죄다 그 번 돈은 써버렸습니다. 그때 어떤 목사가 이래서는 미국의 앞날은 심히 불안하다. 국민에게 저축심을 함양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제적 저축 방법을 생각했더니 어떤 교육가가 이것을 알고 좋은 방법이라고 두 사람은 저금을 선전해서 그것이 지금 미국의 국민성이 되어 풍족해진 이유입니다. 그래서 나는 학령기 아동에게 이번 신학기부터 실행을 선생님께 권해주시기 바라고 그러나 강제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금을 쉽게 인출 못하게 하고 만일 어쩔 수 없을 때는 선생의 증명으로 인출 하는 것으로 하고자 합니다. 근검 저축은 반드시 가정에서 아이 때부터 길러온 사람이 많다는 실례를 두. 세 번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특히 이곳에 지점장으로 계신 후지하라(藤原) 씨의 영애(令嬢)가 지금 모 고등관의 며느리로 시집가 있는데, 그 영애가 소학교 때부터 가정에서 금전 경리라는 것을 배워 월사(月謝)금 남는 것은 저금하는 것을 배워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아이 때부터 가정에서 저축심을 함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또 오사카부 내에 가난해서 거의 생활을 할 수 없는 사람이 2만 명이 있습니다. 이들을 구제하는 데는 부당국도 골치가 아파 여러 가지로 생각했지만, 방법이 없어서 조합을 만들어 매일 일급 받는 사람이나 월급 받는 사람이나 상인도 일부 적립을 하도록 했더니, 120만 원을 저축한 적이 있습니다. 조선에서도 그러한 예가 있습니다. 그것은 밥을 지을 때 한 숟가락의 쌀이나 좁쌀이라도 따로 모아 팔았더니 120호 중 70호의 빈민이 200원의 돈이 생겼다고 합니다. 한집당 나누면 작지만, 그게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모릅니다. 저금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나는 승급 했을 때에 그만큼 제외해서 저금했었습니다만, 이러한 방법은 너무나 쉽습니다. 이것만으로는 안 된다고 지금은 매일 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나의 설명에 찬성하는 분은 저금을 실행하기 바랍니다.
더불어 출석자는 시카노(鹿野) 군수, 에다(江田) 국장, 군직원, 교직원, 경찰관, 신문기자 등이고, 도청 방면 및 지방민이 전무하고 청중이 비교적 적었던 것은 유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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