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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ncheon Digital Archives

춘천에서 (1)
등록번호
00014046
생산일자
1925.09.13
생산지역
춘천시
생산자
부산일보
수집처
미상
소장자
국립중앙도서관
내용
어제 자동차를 뒤에서 밀고 앞에서 당기고, 강의 나룻배로 위험 지대를 거슬러 올라가 기진맥진했다. 몸도 햇살이 오르자 놀라 준비를 했는데 오전 10시 높고 높은 언덕길을 올라 이즈미 자키(泉崎內) 내무부장을 방문하고 또 지사 각하에게 경의를 표했다. 가하노(河野) 경찰부장, 노세다니(野世溪)경무과장, 오쿠다(奧田) 토목과장에게 당당하게 돌고 있는 사이, 한 시인가 두 시가 되었다. 중요한 축항기성속행(築港期成速行) 운동은 예비비 전무(皆無)하다. 각 군의 재해 총액 360만원 대방어선이 가로막혀 까딱하면 허사가 될 것처럼 위험하기 그지없다. 겨우 계(係)의 여러 관(官)에 고려해 볼 것이라는 한 줄기의 희망을 남기고 퇴청했다. 시내를 한 바퀴 돌고 10년 전에 왔던 춘천과는 형체는 약 3배로 팽창한 물질문화는 갑자기 진보했다. 수도, 전화, 전등, 관청의 구거(溝渠), 일신기원(一新紀元)을 획하는 상계(商界)의 흔들리지 않는 대단함과 도(道) 제일의 도읍으로서 명실공의 춘천이 언론계 아니 보도기관으로서의 설비가 전무하다는 것도 과언은 아니다. 대조지(大朝紙)는 최근 어떤 사정으로 통신원 특별 배치를 폐했다. 이제는 경성일보와 신보(申報)가 겨우 남아있고 기구의 조정에 맡길 뿐이다.
□ 도내 일반에게 문화가 지지부진 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도위정자가 선전 포고에 장차 단속에 대해서 보선(報宣) 기관 하나 없어서 마치 어두운 밤에 등불을 잊어버린 것처럼 통절하다. 장사꾼이 물품 매매를 하는데 공정(公定) 상장(相場)에 의해 뱃머리가 큰 바다로 나가 하나의 자석에 뱃사람을 의탁한 것처럼 위정자는 앉아서 책상 위에서 하나의 신문지를 늘어놓고 관하에서 생긴 일을 천하의 정세를 한눈에 알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나침반이 없어서 아이가 손잡고 걷는 것보다도 더욱 부족한 기분이 드는 등 두통으로 시달리고 그날 일과를 마쳤다.
□ 야간 사회과의 ○당환옹(○達煥翁)의 담중석파령(談中席破嶺) (일명 사직고개(辞職峠)라는 춘천 경성간 난관(難關)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도 가엾다. 춘천의 대안신연강(對岸新延江) 나룻터 45.000원의 선교(船橋)를 이번 수해로 유실했지만 이때 사직고개에서 비로소 마음을 새롭게 하고 소생을 생각한다는 의미와 같다. 학무(學務)의 쿠니모리(國守)씨 서(署)의 미자키(三崎)씨 등이 찾아와 실무교육이나 지방 상황 등 유익한 말씀을 들었다. 다음 날은 일찌감치 전날처럼 당당하게 순회를 반복했다. 진정(陳情)한 취지에 대해서도 상당한 동정을 얻고 우리들을 위해 수뇌회의까지 개최되어서 신중(愼重) 심의 경비 염출(捻出)해서 전의(詮議)까지 주신 것은 감사한다. 그 외 사무에 대해서도 히로세(廣瀬) 과장 외의 각각 심원(深遠)한 동정(同情) 아래 지국 설치까지 진행했다. 다음 날은 오랜만에 야마나카(山中) 긴구미(金組)이사를 방문하고 군청에 가토(加藤) 서무주임을 방문하고 볼일을 보았다. 마지막에 오쿠다 과장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각 부, 각 과장에게 마찬가지로 인사를 해서 퇴청한 것은 이미 4시 지나 40분 아마 도청 고개를 내려온 마지막 사람이었을 것이다 (미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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