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면수) 1940년12월10일(3면 1단) 【춘천】남(南)총독(미나미 지로)은 국민총력강원도연맹대회에 임석(참석)하기 위하여 6일에 내춘(來春:춘천에 옴)하였다가 용무를 마치고 익일(翌日:이튿날)인 7일 오후 1시 춘천역발임시열차로 무사 귀성하였다 함은 기보(이미 보도)하였거니와 7일은 오전 9시 5분에 강원신사에 참배한 다음 고미(高尾)지사 이하 원 춘천군수 등의 안내로 춘천군 신동면(新東面) 거두리(擧頭里) 1구 모범연맹부락을 시찰하였다. 총독 일행이 부락에 착수하자 출영(出迎)한 연맹원들은 남총재를 환영하는 의미로 목소리도 우렁차게 황국신민의 서사를 제송하였는데 총독은 만족한다는 듯이 답례를 한 다음 부락시찰로 발길을 옮겼다. 먼저 공동작업장에 들러서 입직(叺織)에 대한 설명을 들은 다음 공동집회장을 구경하였으며 연맹원이 공동경작하는 애국전(愛國田)을 시찰하였는데 그때 원군수에 대하여 애국전에서 생산되는 작물은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 질문에 대하여 원 군수로부터 초수(初穗)를 신궁, 신사에 헌곡(獻穀)하고 또는 전몰장병의 위령제를 거행한 나머지는 공동저금을 한다고 대답하여 총독을 만족케 하였다. 다음 갱생농가 3호를 시찰하였는바 가는 곳마다 『남의 빚은 없는가』하며 고리부채가 있어서는 안될터인데 하고 걱정스럽게 묻자 모두 『당국에서 고리부채 정리를 해주어 지금은 남의 빚이라고는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였으며 절미대(節米袋), 국기보관상(國旗普觀箱), 궁성요배소 등 시설은 물론 양토(養兎), 축우(畜牛) 등의 사양관리에 이르기까지 두루 살펴보았다. 그리고 답로에 견송(見送)나온 부락민에 대하여 총독은 인자한 말솜씨로 이 부락이 성적이 매우 양호하다는 말을 듣고 작일(昨日:어제) 내춘한 총독에 보러 온 것이다. 날씨가 추운데 이같이 나와 주어 고맙게 생각한다. 1932년(소화 7년)경 까지도 이 부락은 여러 사람에게 근심을 끼쳤다. 풍속도 좋지 못한데다가 빚도 많았을 것이며 거기다가 부락민들의 사이도 좋지 못하여 걱정이 적지 않았을 것인데, 그 후 8년이지난 금일은 당시와 반대로 남의 빚도 없을 뿐 아니라 정신적 긴장 밑에서 저금도 하게 되었고 공동작업도 하게 된 것이다. 이는 전혀 실천 실행 즉 이론을 초월한 공동공려(共同公勵)의 결과로 총독을 비롯하여 다른 사람들의 만족하게 여기는 바이다. 실천 궁행(躬行)의 결과는 이 같은 좋은 성과를 빚어내는 것이니 이로써 만족할 것이 아니라 이 부락을 전선(全鮮)제1의 모범부락이 되도록 노력해 주기를 바란다 라고 일장훈시를 하여 부락민들을 감격케 하였다. 부락 시찰을 마친 총독은 그 길로 대마공업(大麻工業)의 유일한 공장인 금강마단통주식회사(金剛麻緞通株式會社)에 이르러 작업상황을 시찰한 다음 우두리 증시무리(曾尸茂梨) 성적(聖蹟)을 시찰하였는데 그때 천기(川崎)성적보존회장으로부터 증호무리신궁을 어조영(御造營)하도록 해달라는 것과 성적 아래에 황국신민육성의 도장을 건설하도록 해달라는 진정이 있었다. 이 증호무리신궁조영문제는 오래전부터 요망해오던 바로 이번 총독의 내도(來道)를 계기로 160만 도민의 열렬한 염원을 비로소 진정하게 된 것이다. 성적을 두루 시찰한 총독은 그 길로 암촌(岩村)제사공장에 도착하여 300여공의 조업상황을 시찰한 다음 도청에 들려 점심을 마치고 나서 오후 1시 춘천역발 임시열차로 귀성하였는데, 이번 총독의 시찰 도중에서 각 금 고령자에 대하여 경의를 표한 것은 유구(悠久)의 인자한 온정이라 하여 도민들은 수구 공○감격하고 있다. (사진은 모범부락의 갱생농가를 시찰하는 총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