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면수) 1940년03월05일(3면 1단) 【춘천】춘천군 신동면(新東面) 거두리(擧頭里) 지내 부락연맹은 1938년(소화 13년) 8월 21일에 결성되었는데 애국반이 3반으로 반원이 전부 3◯명이다. 이 마을도 지난해 여름의 지독한 한해(가뭄의 폐해)를 입어 모든 곡식이 시원치 않았기 때문에 추수 없이 줄었으나 부락민들은 조금도 낙심하는 빛을 보이지 않고 한해에 견디어 왔으며 닥쳐오는 춘궁을 극복해 나가기 위해 만전의 계책을 갖추고 있다. 지금 한참 떠들썩 하게 외치고 있는 혼식이니 혹은 대용식이니 하는 말은 쌀을 한톨이라도 절약하자는 운동인데 이곳 사람들은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코웃음을 치며 선잠을 깨었나 보다 하고 비웃고 있는 것이다. 그는 어째 그런가하며 이 마을에서는 몇백년전부터 혼식과 대용식을 상식으로 하여왔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일 안하면 굶어죽는다는 농도정신(農道精神)에 꽉 젖은 그들은 일해야 먹고 산다는 신념만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래서 피와 땀을 흘려가며 뼈가 부숴지도록 일을 하여 얻은 곡식으로 1년의 계량을 하게 되므로 있으면 있는 대로 밥이면 밥 죽이면 죽으로 규모 있는 생활을 하여 왔다. 그러므로 풍년이 들어서 웃음도 여러번 웃어 보았고 흉년이 들어서 울음도 여러번 울어 보았으니 만치 작년의 한해 쯤은 이곳 부락민들에게는 그리 대단하게 여기지 않는 모양이다. 그러나 반도의 곡창인 남선일대에 한발이 극심하여 추수가 전선적으로 보아 훨씬 줄어들게 되었으므로 식량 부족의 걱정은 이 부락에도 미치게 되어 부락민들은 자숙하는 태도로 쌀 절약에 협력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리하여 애국반을 중심으로 강냉이 감자 등 잡곡이 도리어 맛이 좋다는 듯이 한끼에 먹을 것을 두 끼에 나눠 먹는 등 쌀을 힘써 절약하여 남는 것을 재해지에 보내겠다는 그 아름다운 정신이야말로 감격 아니 할 수 없다. 이 같은 정신이 왼동리에 가득하게 된 것은 사변 이후 시국을 철저히 인식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애국반을 조직한 후 부터는 더욱이 결속이 굳어져서 총동원의 태세로 당면의 난군을 타개해 나가는 등 총후 국민으로 밟아나갈 길을 밟아나가고 있는 것이다. 국민정신총동원이란 국가를 본위로 모든 국민 운동을 한데 뭉쳐 커다란 한 덩어리의 힘을 만들자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없는데 이 부탁의 애국반원들은 이 정신을 참말로 각득하여 각 부문에 뻗쳐 믿음성 있는 활약을 하고 있다. 첫째, 각 가정에서는 집집마다 대마(大麻:삼)를 봉제하여 천조(天祖)의 어신덕을 우러러 받들고 매일 아침마다 자리에서 일어나게 되면 곧 세수를 한 후 집안 식구가 뜰에 모여 동쪽 하늘을 향하여 궁성요배하고 매월 1일 흥아애국일에는 부락민 전부가 집회소에 모여 궁성을 요배하여 흥대한 황은에 감사함과 동시에 황실의 어안태(御安泰)를 마음 속으로 빌고 있는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황국신민서사는 모임이 있을 때마다 반드시 외우게 하며 축제일이나 다른 무슨 경사가 있을 경우에는 국기를 집집마다 내달아 독특한 국민성을 자랑하고 있는 일본정신을 유감 없이 발양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전시경제정책에 협력하기 위하여 물건을 알뜰하게 아껴 쓰지 않으면 안된다해서 소비절약을 철저하게 실천하고 있으며 국민저축운동에 협력하고 저축을 실행하고 있는 것이 선뜻 눈에 띄운다. 몇해전만 하여도 광목(廣木) 옥양목(玉洋木)같은 것을 척척 사들여 새 옷을 장만하는 폐단이 있었으나 사변이 일어난 후 부터는 새 옷을 장만하기는커녕 집에서 만들어 낸 면화까지도 절삼(機織)에 쓰지 않고 모두 공동판매를 하며 입고 있는 옷이 헤지게 되면 몇 번의 고누덕누덕지어서 다시 입고는 한다. 그 뿐 아니라 빨래 같은 것도 양잿물대신에 나무재(목탄)를 쓰고 있으며 어느 집에를 들어가 보든지 도배(壁張紙) 같은 것을 새로 한 집은 없어서 종이 절약에까지 협력하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집집마다 부엌 한 모퉁이에 조그마한 항아리 같은 것을 놓고 아침 저녁으로 식구 수대로 한 숟가락 씩 쌀을 절약하여 저금을 여행(실행)하고 있는데 1938년(소화 13년) 7월에 총후보국실행조합을 조직한 후 오늘까지 푼푼이 저축한 저금액이 벌써 2천여원에 도달하고 있으며 그 외에 틈만 있으면 가마니를 쳐서 군수용으로 공출한 것이 6천 여매 일뿐더러 견피, 산토피, 생돈, 등군수피혁과 피마자 ㄱ닽은 것을 공출하여 충후의 농민부대로서 성전에 참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소비절약과 저축운동은 말로는 쉬운일일지 모르나 실상 쉬운 일이 아니건만 이 마을의 사람들은 이것을 실천하고 있으니 정신총동원 운동이 위대함에 다시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 부락에서는 애국반이 중심이 되어 남자는 물론 부인들까지 괭이와 호미를 들고 나서서 흙과 싸우고 있으며 늙은이와 어린아이들까지도 힘에 맞는 일을 하여 한 사람도 놀고 먹는 사람은 없다. 다시 말하자면 한 집안이 총동원이 되어서 전가근로(全家勤勞)에 의하여 생업보국에 매진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작년 8월부터 애국반을 한데 뭉쳐 근로보국대를 조직한 후부터는 도로의 수선 같은 것도 근로보국대의 깃발아래 유지정비되어 가고 있으며 이동사(里洞祠)의 건설도 보국대의 손으로 세우게 되는 등 제1선에서 피를 흘리며 싸우고 있는 황군의 노고를 생각하고 피땀을 흘려가며 총후를 지키고 있는 광경은 어느 것 하나 감격 아닌 적이 없었다. 또한 이곳 애국반에서는 작년부터 애국전을 경영하여 근로보국대의 공동작업으로 경작하고 있는데 애국전에서 생산한 초수(初穗)는 강원신사에 공진(供進)하여 순국장병의 위령제를 거행하며 근로보국작업에 의하여 수입되는 돈은 적립금으로 충당한 외에는 전부 국방헌금을 해오고 있는 터이다. 이 같이 근로와 생업보국에 총 역량을 기울여 총후 후원에 매진하고 있을 뿐 아니라 춘궁을 당해서도 까닭없이 활약하고 있는 이 마을 사람들의 정신이야말로 성전 수행에 커다란 힘이 되고 있는 것이다(춘천 지사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