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면수) 1940년01월21일(4면 1단) 【춘천】강원도의 면양(緬羊)업은 약진에 약진을 가하고 있다. 더구나 전시하에 있어서 면양의 증식은 국책상 중요부면을 점령하고 있는 만큼 연연히 거대한 비용을 기울여가며 증식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바 여기에 증식계획의 전모를 검토해 보기 전에 멈ㄴ저 면양장려의 유래를 사적으로 고찰해보기로 한다. 조선의 면양장려와 강원도와는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연고가 맺어져 있음을 찾아볼 수 있으니 즉 1913년(대정 2년)당시의 권업 모범장 장본전(長 本前) 박사의 창의에 의하여 농촌진흥의 일익으로 면양 사육사업을 제창한 것이 사업의 제1착수로서 본도 평강군 고수면(高搜面) 소재의 광막(廣漠)한 미간지 개척에 착안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조선에 있어서 면양사육사업의 시조가 된 것으로 그 성적이 양호함에 비추어 본부에서도 적극적 장려의 구체적 계획을 수립하게 되었고 동시에 평강군 세포(洗浦)평야에 목양장을 개설하여 드디어 조선면양장려의 중추시설이 되고 만 것이다. 그 뿐 아니라 1935년(소화 10년)에는 제국 양모 자급의 국책과 농업 경영의 개선을 주안으로 하여 대대적으로 긴속한 면양충실의 기첩을 늘게 되었으니 당시를 상기하는 자로 하여금 감외를 깊게 하는 동시에 조선면양 장려사상의 1항을 단연 빛나게 만든 것이라 하겠다. 그리고 전 원(垣)총독의 남면북양정책의 등장과 함께 본도 또한 이 생기가 넘치는 약동(躍動)으로써 유서깊은 면양의 성지 세포에다가 도립종양장(道立種羊場)을 부활하는 한편 민간 면양장려에 대하여는 전혀 그 목표를 농가부업사육에 주안을 두어 잉여노력의 활용과 자급비료의 이용에 의하여 사육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1호 당 5두를 사양(飼養)케 하여 일반에 보급할 것을 목표로 장려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하여 당초 450두밖에 없던 잡종은 거진 반 갱신을 봄에 이르렀으며 장려품종인 『고리데루종』도 벌서 3,000두를 계산하게 되어 작년 중에 양모 6천톤을 생산하였고 생산자 양 중 종두양(種牧羊)으로서 멀리 만주에 수출된 두수가 100여두에 달하였다. 그 분 아니라 지난 겨울 수요기에 접어들어 육양(肉羊)으로서 경성방면에 속속 반출되고 있는 등 본도의 면양사업은 이제야 본격적 궤도에 오르게 되어 그의 양양한 장래성을 약속해주고 있는 것이다. 다음에 증식계획의 전모를 검토하여 면양사육농가의 참고에 함께하고자 하는 바이다. 본도의 면양즈식계획은 본부계획에 순응하여 1934년(소화 9년)부터 1948년(동 23년)까지 15개년 간에 60,000두에 달하게 할 목표로 수입양, 동척양(東拓羊)을 비롯하여 도종양장배급양으로 증식케 하기로 되어 춘천 수입양동척양증식두수 2,069, 도종양장배급양증식 225, 목표두수 2,359 와 같이 각 군별 증식 계획을 수립한 후 계획수행에 유감없기를 기해 왔는데 사변의 장기화와 국제정세에 급변으로 인한 면양의 증식과 수요는 필연적으로 변화를 아니 일으킬 수 없게 되어 이미 정한 계획으로는 도저히 시국에 대응할 수 없다하여 계획을 변경수립하는 증식계획이란 것은 이미 정한 계획을 전면적으로 뜯어고치는 것이 아니고 단순히 1934년(소화 9년)부터 1948년(23년)까지 15개년간에 60,000두에 달하게 하렫런 목표를 2개년간 단축하여 1946년(소화 21년)까지에 또한 이 60,000두를 증식하려는 것으로 결국 기간을 단축한 급속증산의 대책 뿐이고 각 군의 증식두 수에 있어서는 어찌 등급변동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만 할 것이다. 그리하여 새로운계획이 수립되는 날에는 각종 시설의 확충정비를 단행하는 등 농가의 부업사육을 주안으로 기초양과 종양을 대량구입해서 장려군의 증가를 도모하는 외에 민간 목양장의 보험장려에 치중하여 급속증식에 일편을 가할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계속)(춘천지사 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