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여자 강습소를 찾아서-현란한 이상을 품고 명일(明日:내일)의 출발준비-대기 중인 처녀부대
등록번호
00012687
생산일자
1940.01.19
생산지역
춘천시
생산자
매일신보
수집처
미상
소장자
국립중앙도서관
내용
발행일(면수) 1940년01월19일(3면 1단) 우리의 문답은 다시 계속되었다. 기자 : 먼저번에도 이야기했지만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서 나는 잉것을 먼저 실행하고 싶다든지 또는 이런 것은 이렇게 개선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점이 있으면 참고로 말씀해주십시오. 황 : 저는 첫째 식탁의 개선부터 하고 싶습니다. 각각 상을 차리지 않고 원탁을 쓰게하여 원 집안 식구가 한자리에서 단란하게 먹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물든 옷을 입도록 장려하고 싶으며 농촌부녀들에게 근로작업복을 입도록 장려해보고자 생각 합니다. 이 : 저는 눈뜬 장님이라는 인간의 치욕적 대명사를 벗겨주기 위하여 부녀자들의 계몽운동에 힘써볼까 하며 부락의 미화작업을 실행하도록 노력해볼까 합니다. 그리고 빨래하는 방법을 좀더 경제적으로 개선해보고 싶은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 : 여러분 중에 집에 돌아가서는 곧 결혼생활을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분은 없나요? 하고 물었더니 누구인가 그런데까지는 아직 생각해 본 일이 없다고 대답하는데 약속이나 한 듯이 서로 쳐다보면서 부끄러운 듯 웃어댄다. 기 : 강습소에 들어와서 제일 곤란을 겪은 일은 무엇입니까? 하고 말머리를 돌리니 첫째내렸던 머리를 올려서 쪽을 찔때가 가장 괴로웠었고 다음에는 마치 남자의 바지 모양으로 만든 국방색 근로복을 처음 입을 때가 참말 괴로웠었다고 이구동성으로 솔직히 고백한다. 처음에는 길에나설 수가 없을 만큼 괴로웠으나 지금에는 그 옷이 아니면 일하기에 거북하여 못배길 지경이라고 하며 집에 돌아가서는 농촌부녀들에게 근로복을 입도록 장려하겠다고 한다. 혹시 작업에 지장이 있어서는 하는 생각으로 넘어 오래동안 실례를 하였다고 말한 후 일어서 나오다가 김옥경선생에게 생도들의 거처하는 방을 보여줄 수 없느냐고 하였더니 쾌히 승낙하며 내가 서 있는 곳에서 제일 가깝게 있는 제3반의 방문을 열며 보실 것이 무엇있나요 하며 혼자 웃는다. 방안에는 책상이 서너개 있고 책상 위에는 책이 정돈되어 있다. 선반 위에는 버들고리가 있었는데 아마 의복을 넣어두는 의장의 대용품인 듯 하였다. 방안의 물품이 정연히 놓인 것으로 보아도 어딘가 미래의 착한 며느리와 어머니가 될 전제인 것 같이 보였다. 이모저모로 들추어 볼수록 눈에 뜨이고 귀에 들리는 것이 모두가 감격아닌 것이 없다. 사무실에 들렸더니 송포 선생은 기자에게 차를 권해주며 아래와 같은 말을 들려준다. 이 강습소는 본도 유일의 농촌중견부인 양성기관으로 1936년(소화 11년)에 창설하였는데 경비 기타의 관계로 원잠종제조소안에 두게 되어 오늘까지 끌어왔는데 현재와 같은 환경아래서는 도저히 원활한 훈육을 시킬 수 없다 하여 적당한 곳에 이전하기로 되었다는 것이며 이전 후에는 현재 강습생 정원 40명을 48명으로 늘려 1농가에 8명씩 6농가의 의제농가(擬制農家)를 조직하였는 바 훈련을 위하여 반가운 소식이라 아니할 수 없다. 끝으로 독자에게 소개할 것은 이 강습소는 중견부인의 도장으로서 전선적으로 이름이 알려지고 있는 만큼 해마다 각지로부터 시찰을 오게 되는데 누구나 한번 보게된다면 gnsufs의 철저 함에 감복하고 말 것이라는 것을 감히 보증하여둔다. 여기에 그 실증을 한 개 들어보면 멀리 공주(여자사범학교)로부터 (전략)요저번 귀소를 방문하였을때에는 여러 가지로 훈화도 들려주고 아침의 행사까지 보여주시니 감사합니다. 학생생활 11년만에 한번도 보지 못한 감격이었습니다. 그날 밤 우리들은 감화회를 열고 각자의 감상을 들었더니 누구나다 같은 감격을 말하였을 뿐압니다. 선생(송포 선생을 이름)은 몸으로써 실천 궁행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 존귀한 모양은 평생잊을 수가 없습니다. 농촌의 피폐를 갱생시키고 한걸음 나아가 훌륭한 황국 여성을 육성하고자 열과 사랑으로 정진하고 계신 선생의 정신에 감복하였나이다. 공부도다 그만 치워버리고 실제론 농촌에 나아가 일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여 베길 수가 없습니다.(중략) 생도들을 대표하여 감사의 뜻을 표하나이다. 이러한 편지가 들어왔다. 그것만 가지고 보더라도 얼마나 훈련이 철저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지 않은가? 여명의 조선! 아니 병참기지 반도의 부인운동은 이렇게 하여 전개되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번의 방문기를 끝막음에 당하여 송포 선생과 김 선생 두분의 특별한 호의에 감사하는 동시에 불일(머지 않아) 농촌 제1선으로 출정할 40명 생도들의 책임있는 건투를 빌고 그만 붓을 놓는다(끝) 춘천지사 김근영(金槿榮) 기(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