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면수) 1940년01월06일(2면 1단) 연약한 여성의 몸으로 싸움터에 나가서 빗발치듯 날라오는 적의 탄환을 헤치며 통역으로 또는 선무반으로서 선무공작을 하여 적진을 돌격하는 요사들에지지 않는 활약을 해서 지나(중국)민중으로 하여금 제국의 흥아 공작의 근본 취지를 해득시키고 저간에 돌아온 반도 출신의 두 여성이 있다. 그들은 경선 낙원정(樂圓町)171번지 출생으로 현재 충청남도 공주군 계룡면 경천리에 주소를 가진 이정수(李禎洙)(37)여사와 강원도 춘천읍 욱정(旭町) 125번지 최미숙(崔美淑)(29)여사로 그들은 작년 3월부터 우리의 향토부대에 종군하며 산서성(山西省)의 운성(雲城)에서 신민부녀회를 조직한 것을 비롯하여 피난하여 같은 부녀자를 생업에 안심하고 일하게 하는 것과 의료기관을 통하여 마음과 마음의 합치로써 대동아건설의 기초공작에 훌륭한 성과글 거두었으며 더구나 전국의 변동으로 갑자기 돌진 또는 후퇴하여야 할 경우에는 말을 타고 달리는 등 자못의 위험한 지대로 용맹스럽게 해매며 다녀서 제1선이나 총후의 민중으로 하여금 크게 감격시키고 있다. 그들은 부내 전동여관(典洞旅館)에 유숙하다가 5일 오후에 각각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그들의 경력과 체험이야기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최미숙 여사는 뚝섬공립학교를 마치고 11년 전에 상해에가서 중국구시여학교(求是女學校) 영남중학교(英南中學) 『센트리자-』즉 천주교학교에서 수학하다가 맘ㄴ주사변이 일어나던 때 상해사변으로 말미암아 만주흥안성통료(滿洲興安省通遼)로 가서 3년 동안 살다가 이번 사변이 일어나는 해까지 북경에 있었는데 작년 3월부터 통역으로 종군하여 마침내 이정수여사와 알게 되자 선무공작을 겸하여 보게되었다는데 다음과 같이 감상을 말한다. 학식이라든가 그 외에 모든 방면에 있어서는 다른 장교들만 못하지만 잘하지 못하는 중국어이나 마직접지나 인남녀를 대하여 의사소통을 하게 되니까 예상하던 이상의 효과를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저어니하고 이녀사를 가르치며 꼭 같이 다녔으니 별다른 이야기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