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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ncheon Digital Archives

춘천농업학교(春川農業學校)의 생도 일부가 동요, 3, 4년생 73명이 결속(結束)코 현 교장 유임을 요망
등록번호
00010811
생산일자
1937.06.03
생산지역
춘천시
생산자
매일신보
수집처
미상
소장자
국립중앙도서관
내용
발행일(면수) 1937년06월03일(3면 1단) 【춘천】춘천농업학교 3, 4년생 73명은 1일 오전에 돌연 동맹휴학을 단행하고 도보로 동면을 거쳐 북산면(北山面) 청평사(淸平寺)=읍내에서 조선 리수(里數)로 50리 되는 지점=에 이르러 산 가운데 농성을 치고 있는 것을 학교 당국자와 경찰관의 위무로 겨우 발길을 돌리어 그날 밤 9시경에 학교에 돌아와서 학교 무도장에 모여 가지고 기세를 올리고 있는 것을 학교 당국자와 강원도 학무과원 6, 7명이 연다라 면담하되 이유의 여하를 불문하고 동맹 휴학까지 한다는 것은 불온당 하다고 여러 가지로 설유(說諭:말로 타이름)하였으나 생도들은 평일의 군사 교련을 받은 관계상 어디까지 질서정연한데 도로모 교유(某敎諭)의 면담을 요구하였으나 동 교수는 이튿날인 2일에 면회하자고 하여 그날 밤 12시에 생도들은 해산하였다. 1일 밤에 해산하였던 생도들은 2일 아침에 일제히 등교하여 가지고 전날 밤에 약속하였든 모 교유(某 敎諭)를 면담하겠다고 하여서 학교 측에서는 3, 4학년생 가운데 각 5명씩의 대표자를 골라서 면회하여 요구 조건에 대한 청취를 하는 등 원만 해결에 노력하고 있으나 생도들의 기세가 공고하여 모처럼 해결될 가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이전에 기록한 것과 같이 동맹휴학까지 단행한 사건의 이면에는 아래와 같은 사정이 잠재한다는데, 그 전부터 전기의 모 교유 한사람으로 말미암아 학교 내부에 문제가 그치지 아니하여 평화를 깨트린 일로 비일비재였었는데, 이번에도 문제의 모 교유가 그룹을 만들어 가지고 교장 야중(野中)씨를 배척하라고 계획하던 사실이 발로(發露:드러남)된데서 생도들이 동요되기 시작한 것이라 한다. 이렇게 교장과 교유 사이에 내홍이 생기게 되는 것을 알아차린 야중 교장은 지난 5월 10일에 사표를 제출하고 부산 방면으로 이사하여 가려고 준비하는 것을 알게 된 생도들은 아연(俄然:급작스럽게) 교장 유임 운동을 일으키는 방면 모 교유에 대한 배척 운동을 쌍주곡으로 일으켜서 일은 복잡하게 되었다는데 이런 운동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야중 교장에 대한 사임 사령서가 31일부로 내려서 동 교장은 6일 부산으로 떠나기로 되었다는데 생도들은 그 내면을 모르고 있는 모양인데 6일에 교장이 떠나는 때에는 생도들의 행동은 어떠한 사태를 일으킬지는 자못 주목을 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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