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면수) 1937년05월13일(3면 4단) 【춘천】별항(別項)과 같이 대야(大野) 정무총감은 5시 15분 춘천여자강습소(春川女子講習所)에 들러 북택(北澤) 기사(技師)의 상황 보고를 들은 후 강습생 일동을 강당에 모아놓고 금일까지 조선의 부녀자는 가내(家內)에만 박혀있어 가사만 하기에 급급하였다. 물론 가사에도 좋으나 작물 재배, 양잠, 면작도 배워서 조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즉 땀을 흘려 노동하여 훌륭한 남의 처가 되고 남의 어머니가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여기서 배운 후 귀향한 후에는 농촌의 중견 부인이 되어 현처양모(賢妻良母)로서 내조에 힘써 자녀를 구하며 동리(洞里)의 일에 힘써 소기의 미과(美果:아름다운 결과)를 거두어 주기를 바란다라고 간단한 훈시가 있는 후 북택 소장(所長)의 안내로 기숙사를 본 다음 동 6시 10분 춘천고보(춘천공립고등보통학교)에 들러 고보(高普) 가본(榎本) 교장, 농교(農校:춘천공립농업학교) 교장 대리(代理) 중야(中野) 교유(敎諭)의 학교상황 보고를 청취한 다음 동 운동장에서 양 교생의 연합 분열식(分列式)의 사열(査閱)이 있었다. 계속하여 양교 전 생도에게 일장 훈시가 있는 후 곧장 나아가(一路) 신북면(新北面) 우두산(牛頭山) 『증호무리(曾戶茂梨)』유적에 도착, 정상(井上) 군수로부터 사기(史記)에 의한 유래와 전설 등을 상세 청취하고 오후 7시 40분 읍 당지(當地) 추야여관(萩野旅館)에 들어갔는데 조금도 피로함이 없이 원기가 매우 왕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