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7년(헌종 3)에 춘천부(春川府)에서 서상(西上) 권산리(權山里)에 거주하는 진사(進士) 최윤수(崔胤秀)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조선시대의 준호구는 오늘날의 호적등본, 주민등록등본과 같은 성격을 지니며 주호(主戶)의 신청에 의해 발급된다. 주호가 신청을 하면 관청에서는 호적대장의 내용을 확인해 그 내용을 등서하여 발급해 주었다. 준호구의 형식은 경국대전에 명시되어 있는데 발급일과 발급관서를 먼저 기재하고 '고간지성적호구장내(考干支成籍戶口帳內)'로 시작한다. 그리고 주호의 거주지와 가족구성원, 주호와 처의 사조 및 소유한 노비에 대해 연서(連書)한다. 해당 문서는 이러한 준호구 형식을 따르고 있으나 문서를 발급해 준 부사를 기재하지 않고 서압만 찍었으며, 주협개인은 있으나 관인은 찍혀 있지 않다.
문서에 의하면 최윤수는 1775년[을미(乙未)]생으로 당시 나이는 63세였고 본관은 수성(隋城)이다. 최윤수의 부(父)는 학생(學生) 최좌해(崔左海)이고 생부(生父)는 학생 최성해(崔星海)이다. 이를 통해 최윤수는 최좌해에게 입양된 양자였음을 알 수 있다. 조(祖)는 학생 최곤(崔晜)이며 증조(曾祖)는 학생 최태숭(崔泰崇)이다. 외조(外祖)는 학생 이평(李坪)이고 본관은 우봉이다. 연관문서들을 통해 볼 때, 최윤수의 부친 최좌해는 1759년, 1777년, 1801년 준호구의 주호였던 최준해(최백해)와 동일한 항렬에 있으며, 증조부가 같은 것으로 보아 최윤수는 1831년 준호구의 주호인 최내수와 육촌지간임을 알 수 있다. 최윤수의 처(妻) 풍산홍씨(豊山洪氏)는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함께 사는 가족으로는 아들 최광찬(崔光纘, 28세), 며느리 의령남씨(宜寧南氏, 28세), 아들 최광신(崔光紳, 24세), 며느리 안동권씨(安東權氏, 25세), 서자(庶子) 최광진(崔光縉, 33세), 며느리 전주이씨(全州李氏, 25세), 아들 최광선(崔光繕, 29세), 며느리 안동김씨(安東金氏, 29세), 조카 최광의(崔光毅, 37세), 조카 며느리 전주이씨(全州李氏, 35세), 사위 민치갑(閔致甲, 34세)이 있다. 일반적으로 준호구에서 함께 살고 있는 자식의 내용을 기재할 때 '솔자(率子)'로 시작하여 장자부터 나이순으로 기재하나 해당 문서는 '서자'를 따로 명시하였다. 서자인 최광진을 기준으로 최광찬과 최광신이 적자라면 최광진의 뒤에 기재되고 있는 최광선 역시 서자임을 추측해볼 수 있다.
최윤수가 소유한 노비는 남자종 1명이 기재되어 있다. 한편, 춘천 수성최씨 가문의 문서는 총 7통의 준호구가 현존한다. 첫 번째 문서는 1759년에 작성되었고 마지막 문서는 105년 뒤인 1864년에 작성되었다. 이 문서들은 약 100년이라는 시간 차이를 두고 작성되어 수성최씨 가문의 가계 변화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