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1년(순조 31)에 춘천부(春川府)에서 서상면(西上面) 권산리(權山里)에 거주하는 생원(生員) 최내수(崔乃秀)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조선시대의 준호구는 오늘날의 호적등본, 주민등록등본과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 준호구는 각 가문이 필요로 할 때 해당 관청에 신청하였으며 관청에서는 호적대장의 내용에 의거해 등서하여 발급하였다. 준호구의 형식은 경국대전에 명시되어 있는데 발급일과 발급관서를 먼저 기재하고 '고간지성적호구장내(考干支成籍戶口帳內)'로 시작한다. 이후로 주호의 거주지와 가족구성원, 주호와 처의 사조 및 소유한 노비에 대해 연서(連書)한다. 해당 문서는 가족사항에 관해서는 열서(列書)하였고 노비에 관한 사항은 연서(連書)하였다.
문서에 따르면 최내수는 1760년[경진(庚辰)]생으로 당시 나이는 72세였고 본관은 수성이다. 1801년의 문서에 의하면 거주지가 서상면 신포리였으나 본 문서는 연관문서인 1759년과 1777년의 준호구와 마찬가지로 거주지가 서상면 권산리로 되어 있다. 해당 문서부터는 주호가 최내수로 바뀌어 최내수의 부친인 최준해가 사망하였음을 알 수 있다.
최내수의 부(父)는 학생(學生) 최준해(崔準海)이고 조(祖)는 학생 최승(崔昇)이며 증조(曾祖)는 학생 최태숭(崔泰崇)이다. 외조(外祖)는 통덕랑(通德郞) 이삼령(李杉齡)이며 외조부의 본관은 전주이다.
처(妻) 안동권씨(安東權氏)는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함께 사는 가족으로는 아들 유학(幼學) 최광련(崔光鍊, 51세), 첫째 손자 유학 최재문(崔在聞, 24세), 손자 며느리 선산김씨(善山金氏, 27세), 둘째 손자 유학 최재성(崔在聲, 18세), 손자 며느리 전주이씨(全州李氏, 21세)가 있다. 또 서제(庶弟) 최미수(崔美秀, 51세)와 그의 처 함열남궁씨(咸說南宮氏, 46세)도 함께 거주하고 있다. 아들 최광련은 1801년의 문서에 등장하는 최내수의 아들 최한달과 출생년도 및 부인의 성씨가 같은 것으로 보아 개명한 것으로 보인다. 며느리 평강채씨(平康蔡氏)는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최내수의 소유 노비의 수는 총 51명이 기록되어 있다. 그 중 남자종은 25명이고 여자종은 26명이다. 이 노비들의 출생연도는 모두 기재되어 있으나 부모의 정보에 대해서는 규칙적이지 않게 기재되어 있다. 노비 중 3명은 외거노비인데 광주에서 거주하는 여자종 1명이 있고 2명은 거주지가 기재되지 않았다.
한편, 춘천 수성최씨 가문의 문서로는 총 7통의 준호구가 현존하고 있다. 첫 번째 문서는 1759년에 작성되었고 마지막 문서인 일곱 번째 문서는 105년 뒤인 1864년에 작성되었다. 이들 문서는 약 1세기 간의 시차를 두고 작성되었기 때문에 수성최씨 가문의 가계 변화 상황에 대해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