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구(崔寅矩) 준호구 (6)
- 등록번호
- 00016377
- 생산일자
- 1866
- 생산지역
- 미상
- 생산자
- 춘천부(春川府)
- 수집처
- 김현식
- 소장자
- 춘천학연구소
-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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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는 1866년(고종 3)에 춘천부(春川府) 남내면(南內面) 삼천리(三川里)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최인구(崔寅矩)에게 발급해준 준호구이다. 춘천 삭녕최씨 가문의 문서로는 총 6통의 준호구가 현존하는데 1852년부터 1873년까지 21년에 걸쳐 작성되었다. 해당 문서는 이중에서 다섯 번째로 작성된 문서이다.
문서에 따르면 최인구는 1813년생으로 당시 나이는 55세였고 본관은 삭녕이다. 이전 문서인 1864년의 문서 이후로 2년 뒤에 작성된 문서이므로 당시 최인구의 나이는 54세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처(妻)의 나이는 맞게 기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최인구의 나이가 잘못 기재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최인구의 부(父)는 학생(學生) 최일민(崔一敏)이고 생부(生父)는 학생 최성민(崔性敏)이다. 조부(祖父)는 학생 최건주(崔建柱)이고 증조부(曾祖父)는 학생 최명성(崔命性)이다. 외조부(外祖父)는 학생 최재성(崔在城)이고 본관은 수성이다.
처 전주류씨(全州柳氏)는 1824년생으로 당시 나이는 43세였다. 부는 학생 류지연(柳智淵)이고 조부는 학생 류성운(柳聖運)이다. 증조부는 학생 류언한(柳彦漢)이고, 외조부는 학생 이식(李植)이며 본관은 전주이다.
소유한 노비는 남자종 1명이 있는데 이름과 출생년, 나이가 함께 기재되어 있다.
준호구식은 경국대전에 실려 있는데 발급일과 발급관서를 기재하고 '고모년성적호구장내(考某年成籍戶口帳內)'로 시작해 주호와 처의 사조, 가족구성원, 소유한 노비에 대해 연서(連書)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해당 문서는 사조와 가족구성원에 대해서는 열서(列書)하고 노비에 대해서는 연서하였다. 조선 후기에 이르면 준호구와 호구단자의 구분이 모호해지면서 문서식의 변화가 나타나는데 해당 문서에서 이러한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준호구에는 문서를 발급하고 확인한 관리가 수결을 하고 관인(官印)과 주협개인(周挾改印)을 찍는다. 해당 문서에는 관인과 주협개인이 같은 위치에 겹쳐서 찍혀 있다.
가로56cm, 세로63.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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