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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ncheon Digital Archives

이태호(李泰祜) 준호구 (4)
등록번호
00016367
생산일자
1876
생산지역
미상
생산자
춘천부(春川府)
수집처
김현식
소장자
춘천학연구소
내용
1876년(고종 13)에 춘천부(春川府)에서 서상면(西上面) 반송리(盤松里)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이태호(李泰祜)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춘천 용인이씨 가문의 문서로는 총 22통의 준호구가 현존하고 있다. 첫 번째 문서는 1795년에 작성되었고 마지막 문서인 22번째 문서는 102년 뒤인 1897년에 작성되었다. 해당 문서는 열여덟 번째 문서가 작성된 이후 3년 뒤에 작성된 열아홉 번째 문서이다.
문서에 따르면 이태호는 1819년생으로 당시 나이는 58세였고 본관은 용인이다. 부(父)는 학생(學生) 이보철(李普喆)이고 생부(生父)는 학생 이보일(李普一)이다. 생부가 기재된 것을 통해 이태호가 양자였음을 알 수 있다. 조부(祖父)는 학생 이의격(李宜格)이고 증조부(曾祖父)는 학생 이경춘(李景春)이다. 외조부(外祖父)는 증 절충장군(贈折衝將軍)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최계(崔溪)이고 본관은 해주이다.
처(妻) 청주한씨(淸州韓氏)는 1823년생으로 당시 나이는 54세였다. 청주한씨는 이태호의 전처 반남박씨가 사망한 이후로 재혼하였다. 청주한씨의 부는 학생(學生) 한용태(韓用泰)이고 조부는 학생 한원유(韓元裕)이다. 증조부는 학생 한설모(韓說謩)이고 외조부는 학생 송문주(宋文周)이며 본관은 진천이다.
또한 아들 유학(幼學) 이재봉(李在鳳, 32세), 며느리 창녕성씨(昌寧成氏, 33세), 조카 유학 이재형(李在馨, 27세), 조카며느리 창녕성씨(昌寧成氏, 29세), 조카 유학 이재만(李在萬, 25세), 조카며느리 평해황씨(平海黃氏, 29세)와도 함께 거주하였다.
소유한 노비는 노(奴: 남자종) 2명, 비(婢: 여자종) 3명을 총 5명이 있었다. 이들은 노비임에도 모두 성씨(姓氏)가 기재되어 있는 것이 특징인데 원래 신분이 양인이었으나 생활이 궁핍하여 이태호의 가문에 자매(自賣)한 것으로 추정된다.

가로50cm, 세로69.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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