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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ncheon Digital Archives

이익호(李益祜) 준호구 (3)
등록번호
00016366
생산일자
1837
생산지역
미상
생산자
춘천부(春川府)
수집처
김현식
소장자
춘천학연구소
내용
1837년(헌종 3)에 춘천부(春川府)에서 서상면(西上面) 반송리(盤松里)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이익호(李益祜)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춘천 용인이씨 가문의 문서는 총 22통의 준호구가 현존하고 있다. 첫 번째 문서는 1795년에 작성되었고 마지막 문서인 22번째 문서는 102년 뒤인 1897년에 작성되었다. 해당 문서는 아홉 번째 문서가 작성된 이후 3년 뒤에 작성된 열 번째 문서이다.
조선시대의 준호구는 오늘날의 호적등본, 주민등록등본과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었고 주호(主戶)의 신청에 의해 발급되는 것이 특징이었다. 각 가문에서 필요 시에 준호구를 신청하면 해당 관청에서는 호적대장의 내용에 근거해 그 내용을 등서하여 발급해 주었다. 준호구의 형식은 경국대전에 기재되어 있는데 발급일과 발급관서를 먼저 기재하고 '고간지성적호구장내(考干支成籍戶口帳內)'로 시작한다. 이후로는 주호와 처(妻)의 사조, 가족구성원, 소유 노비에 대해 연서(連書)하였다. 준호구와 비슷한 성격의 문서로는 호구단자가 있는데 호구단자는 준호구와 달리 그 내용을 열서(列書)하였다. 그러나 18세기에 이르면 준호구의 기재 방식이 호구단자와 혼용되는 사례가 나타난다. 해당 준호구도 사조와 가족구성원에 관한 내용을 별행(別行)하여 열서하였다.
일반적으로 준호구에는 문서를 발급하고 확인한 관리의 수결과 붉은 인장, 주협개인(周挾改印)이 찍힌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해당 준호구에는 관리의 수결은 있으나 인장과 주협개인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해당 준호구부터는 주호가 이보일(李普一)에서 그의 아들인 이익호(李益祜)로 바뀌었다. 이익호는 이보일의 친아들이나 이보일과 동일 항렬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이보철(李普喆)의 양자로 입양되었다.
문서에 따르면 이익호은 1819년생으로 당시 나이는 19세였고 본관은 용인이다. 이익호의 부(父)는 학생(學生) 이보철(李普喆)이고 생부(生父)는 학생 이보일(李普一)이다. 이익호의 부친과 생부가 모두 사망하여서 이익호가 호를 물려받아 주호가 된 것을 알 수 있다. 조부(祖父)는 학생 이의격(李宜格)이고 증조부(曾祖父)는 학생 이경춘(李景春)이다. 외조부(外祖父)는 절충장군(折衝將軍)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최계(崔溪)이고 본관은 해주이다.
처 반남박씨(潘南朴氏)는 1818년생으로 당시 나이는 20세였다. 부는 유학(幼學) 박종재(朴宗載)이고 조부는 성균진사(成均進士) 박기원(朴淇源)이다. 증조부는 학생(學生) 박사일(朴師壹)이고 외조부는 유학 성시묵(成時黙)이며 본관은 창녕이다.
함께 사는 아우 동몽(童蒙) 이창호(李昌祜)는 17세였다.
해당 문서에는 소유 노비에 대한 사항이 기재되지 않았다.

가로50.5cm, 세로26.4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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