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7년(고종 4)에 춘천부(春川府)에서 서상면(西上面) 반송리(盤松里)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이태호(李泰祜)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춘천 용인이씨 가문의 문서로는 총 22통의 준호구가 현존하고 있다. 첫 번째 문서는 1795년에 작성되었고 마지막 문서인 22번째 문서는 102년 뒤인 1897년에 작성되었다. 해당 문서는 열여섯 번째 문서가 작성된 이후 6년 뒤에 작성된 열일곱 번째 문서이다.
문서에 따르면 이태호는 1819년생으로 당시 나이는 49세였고 본관은 용인이다. 부(父)는 학생(學生) 이보철(李普喆)이고 생부(生父)는 학생 이보일(李普一)이다. 생부가 기재된 것을 통해 이태호는 이보철의 양자였음을 알 수 있다. 조부(祖父)는 학생 이의격(李宜格)이고 증조부(曾祖父)는 학생 이경춘(李景春)이다. 외조부(外祖父)는 증 절충장군(贈折衝將軍)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최계(崔溪)이고 본관은 해주이다.
처(妻) 청주한씨(淸州韓氏)는 1823년생으로 당시 나이는 45세였다. 청주한씨는 전처 반남박씨가 사망한 이후로 이태호와 재혼한 아내이다. 청주한씨의 부는 학생(學生) 한용태(韓用泰)이고 조부는 학생 한원유(韓元裕)이다. 증조부는 학생 한설모(韓說謩)이고 외조부는 학생 송문주(宋文周)이며 본관은 진천이다.
처 외에 함께 사는 가족으로는 아들 유학(幼學) 이재봉(李在鳳, 23세)와 며느리 창녕성씨(昌寧成氏, 24세)가 있다. 이재봉은 이전의 준호구들에서는 기재되지 않다가 해당 준호구에서 처음 기재되고 있으며 1897년의 준호구에 따르면 이재봉은 이태호의 양자였다. 또 조카인 유학 이재응(李在應, 18세), 조카며느리 창녕성씨(昌寧成氏, 20세)도 함께 거주하고 있었다.
소유한 노비는 비(婢: 여자종) 1명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