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8년(고종 25)에 춘천부(春川府)에서 서상면(西上面) 반송리(盤松里)에 거주하는 진사(進士) 이중호(李重祜)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춘천 용인이씨 가문의 문서로는 총 22통의 준호구가 현존하고 있다. 첫 번째 문서는 1795년에 작성되었고 마지막 문서인 22번째 문서는 102년 뒤인 1897년에 작성되었다. 해당 문서는 20번째 문서가 작성된 이후 9년 뒤에 작성된 21번째 문서이다.
문서에 따르면 이중호는 1808년생으로 당시 나이는 81세였고 본관은 용인이다. 이전의 문서들과 비교했을 때 사조나 처에 관한 사항이 이익호(이태호, 이윤호)와 일치하는 것으로 보아 이중호로 개명하였음을 추정해 볼 수 있다. 또한 해당 문서에는 유학(幼學)이 아닌 진사(進士)로 기재되었는데 이는 이중호가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입학할 자격을 얻었음을 의미한다. 부(父)는 학생(學生) 이보철(李普喆)이고 생부(生父)는 학생 이보일(李普一)이다. 생부가 기재된 것을 통해 이중호는 동족 혈연 내에서 입양된 양자임을 알 수 있다. 조부(祖父)는 학생 이의격(李宜格)이고 증조부(曾祖父)는 학생 이경춘(李景春)이다. 외조부(外祖父)는 증 절충장군(贈折衝將軍)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최계(崔溪)이고 본관은 해주이다.
처(妻) 반남박씨(潘南朴氏)는 사망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 이전의 준호구에 따르면 반남박씨는 1843년에서 1845년 사이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1861년 준호구에서 청주한씨(淸州韓氏)와 재혼한 사실이 확인된다. 그러나 해당 문서에는 청주한씨에 관한 내용이 없고 이미 사망한 전처에 대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반남박씨의 부는 유학(幼學) 박종재(朴宗載)이고 조부는 성균진사(成均進士) 박기원(朴淇源)이다. 증조부는 증 통정대부(贈通政大夫)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박사일(朴師壹)이고 외조부는 학생(學生) 성시묵(成時黙)이며 본관은 창녕이다.
가족으로는 아들 유학 이재봉(李在鳳, 44세)이 있고 며느리 창녕성씨(昌寧成氏)는 사망하였다. 이재봉과 창녕성씨 사이의 자식인 유학 이숭현(李崇鉉, 21세)이 처음 이 문서에 등장하였다.
또 조카 유학 이재형(李在馨, 39세), 조카며느리 창녕성씨(昌寧成氏), 조카 유학 이재만(李在萬, 37세), 조카며느리 평해황씨(平海黃氏)와도 동거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이전의 문서들에는 조카며느리들의 나이까지 모두 기재했으나 해당 문서에는 기재되지 않았다.
소유노비는 노(奴: 남자종) 2명, 비(婢: 여자종) 3명으로 총 5명이 있었다. 1879년의 준호구에 따르면 이들 중 4명(노 2명, 비 2명)은 비(婢) 안춘금의 자식이다. 해당 준호구에는 안춘금에 대한 내용이 기재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