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호(李益祜) 준호구 (2)
- 등록번호
- 00016350
- 생산일자
- 1845
- 생산지역
- 미상
- 생산자
- 춘천부(春川府)
- 수집처
- 김현식
- 소장자
- 춘천학연구소
-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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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5년(헌종 11)에 춘천부(春川府)에서 서상면(西上面) 반송리(盤松里)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이익호(李益祜)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춘천 용인이씨 가문의 문서로는 총 22통의 준호구가 현존하고 있다. 첫 번째 문서는 1795년에 작성되었고 마지막 문서인 22번째 문서는 102년 뒤인 1897년에 작성되었다. 해당 문서는 열세 번째 문서가 작성된 이후 2년 뒤에 작성된 열네 번째 문서이다.
준호구의 형식은 발급일자와 발급관서를 가장 먼저 쓰고 사조, 가족구성원, 소유 노비에 대해 연서(連書)한다. 준호구와 비슷한 성격의 문서로는 호구단자가 있는데 호구단자의 기재 방식은 별행(別行)하여 열서(列書)하는 것이다. 18세기에 이르면 준호구의 기재 방식이 호구단자와 혼재되는 양상을 보인다. 해당 문서도 사조와 가족구성원에 대해서 열서하였다.
또한 준호구에는 붉은 인장과 주협개인(周挾改印)을 각각 다른 위치에 찍는데 해당 문서에는 같은 위치에 겹쳐 찍혔다.
문서에 따르면 이익호는 1819년생으로 당시 나이는 27세였고 본관은 용인이다. 1843년의 준호구에서 이익호가 이영호(李榮祜)로 개명했다고 하였으나 해당 문서에는 이익호로 기재되고 있다. 부(父)는 학생(學生) 이보철(李普喆)이고 생부(生父)는 학생 이보일(李普一)이다. 이익호는 이보철의 양자였음을 알 수 있다. 조부(祖父)는 학생 이의격(李宜格)이고 증조부(曾祖父)는 학생 이경춘(李景春)이다. 외조부(外祖父)는 증 절충장군(贈折衝將軍)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최계(崔溪)이고 본관은 해주이다.
처 반남박씨(潘南朴氏)는 1818년생인데 사망한 것으로 기재되었다. 1843년에서 1845년 사이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부는 유학(幼學) 박종재(朴宗載)이고 조부는 성균진사(成均進士) 박기원(朴淇源)이다. 증조부는 학생 박사일(朴師壹)이고 외조부는 유학 성시묵(成時黙)이며 본관은 창녕이다.
1843년의 준호구에는 노비가 5명이 있는 것으로 기재되었으나 해당 문서에는 노비에 대한 사항이 기재되어 있지 않다.
가로49cm, 세로58.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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