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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ncheon Digital Archives

이익호(李益祜) 준호구 (1)
등록번호
00016349
생산일자
1843
생산지역
미상
생산자
춘천부(春川府)
수집처
김현식
소장자
춘천학연구소
내용
1843년(헌종 9)에 춘천부(春川府)에서 서상면(西上面) 반송리(盤松里)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이익호(李益祜)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춘천 용인이씨 가문의 문서는 총 22통의 준호구가 현존하고 있다. 첫 번째 문서는 1795년에 작성되었고 마지막 문서인 22번째 문서는 102년 뒤인 1897년에 작성되었다. 해당 문서는 열한 번째 문서가 작성된 이후 3년 뒤에 작성된 열두 번째 문서이다.
조선시대의 준호구는 오늘날의 호적등본이나 주민등록등본과 그 성격을 같이 하며 신분과 재산의 증명 또는 노비추쇄 시에 사용되었다. 준호구는 각 가문에서 필요 시에 관청에 신청했으며 관청에서는 호적대장의 내용을 근거로 등서하여 발급해 주었다. 준호구의 형식은 경국대전에 기재되어 있는데 발급일과 발급날짜를 먼저 쓰고 사조와 가족구성원, 소유 노비에 대해 연서(連書)한다. 준호구와 유사한 성격의 문서로는 호구단자가 있는데 호구단자의 기재 방식은 별행(別行)하여 열서(列書)하는 것이다. 18세기가 되면 준호구의 기재 방식이 호구단자와 혼용되는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해당 준호구도 사조와 가족구성원에 관한 내용은 열서하고 소유 노비에 대해서는 연서하였다.
보통 준호구에는 관리의 수결과 붉은 인장, 주협개인(周挾改印)이 찍혀 있다. 인장과 주협개인은 각각 다른 위치에 찍히는데 해당 문서에서는 인장과 주협개인이 같은 위치에 겹쳐져서 찍혀 있는 것이 특징이다.
문서에 따르면 이익호는 1819년생으로 당시 나이는 25세였고 본관은 용인(龍仁)이다. 이익호는 이영호(李榮祜)로 개명하였다. 이익호의 부(父)는 학생(學生) 이보철(李普喆)이고 생부(生父)는 학생 이보일(李普一)이다. 이를 통해 이익호는 동족 혈연 내에서 입양된 양자임을 알 수 있다. 조부(祖父)는 학생 이의격(李宜格)이고 증조부(曾祖父)는 학생 이경춘(李景春)이다. 외조부(外祖父)는 절충장군(折衝將軍)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최계(崔溪)이고 본관은 해주이다.
처 반남박씨(潘南朴氏)는 1818년생으로 당시 나이는 26세였다. 부는 유학(幼學) 박종재(朴宗載)이고 조부는 성균진사(成均進士) 박기원(朴淇源)이다. 증조부는 학생 박사일(朴師壹)이고 외조부는 유학 성시묵(成時黙)이며 본관은 창녕이다.
1837년과 1840년의 문서에서 등장했던 이익호의 아우 이창호(李昌祜)에 대한 내용은 기재되지 않았다.
소유한 노비는 남자종 1명 , 여자종 4명로 총 5명이 있었다. 이 중 남자종 홍완복(洪完福, 당시 나이 19세)은 1840년 문서의 남자종 홍완호(洪完祜, 당시 나이 16세)와 출생 연도 및 나이가 일치하는 것으로 보아 동일인물로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노비도 개명했음을 알 수 있다. 이익호 집안의 노비들은 성씨(姓氏)가 기재된 것이 특징인데 이에 대해서는 이들이 양인이었으나 생활이 궁핍하여 스스로 노비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가로58.2cm, 세로75.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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