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7년(숙종 43) 6월 20일에 원양도(原襄道) 겸 방어사(防禦使) 춘천부사(春川府使) 정도복(丁道復)에게 내리는 밀부유서(密符諭書)이다.
유서(諭書)의 종류는 밀부유서, 포상유서(褒賞諭書), 훈유유서(訓諭諭書) 등이 있다. 밀부유서는 왕이 각 지방으로 부임하는 관찰사(觀察使), 절도사(節度使), 방어사(防禦使), 유수(留守) 등에게 왕과 그 관원만 알 수 있는 밀부(密符)를 함께 내리면서 발급하는 문서이다. 관찰사, 절도사, 방어사, 유수 등은 군사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관원들이 왕명 없이 군사를 움직이거나 간계에 빠져 군대를 일으키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밀부를 맞춰보았다. 포상유서는 국왕이 관찰사나 어사가 올린 장계나 계본 등을 참고해 공적이 있는 지방 관원을 포상하기 위해 발급하는 문서이다. 훈유유서는 국왕이 관원 및 백성을 훈유하거나 타이르기 위해 발급하는 문서이다.
이 문서는 밀부유서로 그 내용은 정도복이 한 지방을 체임(體任)받아 그 책임이 가볍지 않으니 군사를 가벼이 일으키지 말고 백성을 편안케 하며, 또 임금과 정도복이 독단으로 처리할 일이 있을 때는 밀부가 아니면 시행하지 말고 의외의 간모(奸謀)를 예방하기 위해 만약 비상의 명령이 있으면 부(符)를 합해 의심이 없어진 연후에 명(命)에 따르라고 기재되어 있다.
이 문서의 구성을 살펴보면 유(諭)로 시작해 수취인과 내용을 적고 마지막에 다시 유(諭)라 기재해 유서임을 알리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줄에는 문서의 발급년도와 날짜를 적고 연호 위에 유서지보(諭書之寶)를 안보했다. 또한 연호뿐만 아니라 문서 중간 중간에 유서지보를 안보해 총 5번을 찍었다.
정도복의 본관은 압해(押海), 자는 내중(來仲), 정호선(丁好善)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교리(校理) 정언벽(丁彦璧)이며, 아버지는 참의(參議) 정시윤(丁時潤)이다. 1694년(숙종 20) 성균관(成均館) 유생(儒生)으로 있을 때 과제(課製)에서 1등으로 뽑혔으며, 그 해 시행된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다. 그 뒤 태안·안주·춘천 등지의 지방관으로 재직,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의 칭송을 받았다. 이후 내·외관직을 두루 역임한 뒤 공조참의(工曹參議)를 거쳐 승정원좌부승지(承政院左副承旨)에까지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