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2년(현종 13) 7월 12일 원양도(原襄道) 겸 방어사(防禦使) 춘천부사(春川府使) 이집(李鏶)에게 내리는 밀부유서(密符諭書)이다.
유서(諭書)의 종류는 밀부유서, 포상유서(褒賞諭書), 훈유유서(訓諭諭書) 등이 있다. 밀부유서는 왕이 각 지방으로 부임하는 관찰사(觀察使), 절도사(節度使), 방어사(防禦使), 유수(留守) 등에게 왕과 그 관원만 알 수 있는 밀부(密符)를 함께 내리면서 발급하는 문서이다. 관찰사, 절도사, 방어사, 유수 등은 군사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관원들이 왕명 없이 군사를 움직이거나 간계에 빠져 군대를 일으키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밀부를 맞춰보았다. 포상유서는 국왕이 관찰사나 어사가 올린 장계나 계본 등을 참고해 공적이 있는 지방 관원을 포상하기 위해 발급하는 문서이다. 훈유유서는 국왕이 관원 및 백성을 훈유하거나 타이르기 위해 발급하는 문서이다.
이 문서는 밀부유서로 그 내용은 이집이 한 지방을 체임(體任)받아 그 책임이 가볍지 않으니 군사를 가벼이 일으키지 말고 백성을 편안케 하며, 또 임금과 이집이 독단으로 처리할 일이 있을 때는 밀부가 아니면 시행하지 말고 의외의 간모(奸謀)를 예방하기 위해 만약 비상의 명령이 있으면 부(符)를 합해 의심이 없어진 연후에 명(命)에 따르라고 기재되어 있다.
이 문서의 구성을 살펴보면 유(諭)로 시작해 수취인과 내용을 적고 마지막에 다시 유(諭)라 기재해 유서임을 알리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줄에는 문서의 발급년도와 날짜를 적고 연호 위에 유서지보(諭書之寶)를 찍었다. 또한 연호뿐만 아니라 문서 중간 중간에 유서지보를 총 5번을 찍었다.
이집의 본관은 전주(全州), 아버지는 광흥창수(廣興倉守) 이익배(李益培)이다. 1657년(효종 8)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을 거쳐, 1673년(현종 14) 함경도병마절도사(咸鏡道兵馬節度使)가 되고, 이어 황해도병마절도사(黃海道兵馬節度使)가 되었다. 그 뒤 노론의 대신 송시열(宋時烈)을 탄핵하였다가 1680년(숙종 6) 부호군(副護軍)의 벼슬에서 관작을 잃고 유배되었다. 이 사건을 경신환국(庚申換局)이라 하는데, 소론이 크게 제거되었을 때 연루된 것이었다. 1689년 이른바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소론이 등용됨에 따라 유배에서 풀리고, 훈련대장(訓鍊大將)이 되었다. 이어 승지(承旨)를 지내고 1691년 공조판서(工曹判書)에 특진되어 재직하다 죽었다. 시호는 장숙(莊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