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5년(고종 22) 12월 8일 남자종 소상철(小商哲)이 소댁(小宅) 남자종 삼봉(三奉)에게 토지를 방매하면서 준 토지매매명문이다.
일반적으로 명문에는 작성시기와 매득인, 권리의 유래와 매도이유, 거래목적물의 소재지 및 면적표시, 매물의 가격, 본문기의 교부여부 및 처리방법, 추탈담보문언, 방매인과 거래참여자 등이 기재되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 이러한 사항들 중 일부가 생략되기도 하였다.
이 문서에 기재된 토지의 방매 이유는 '요용소치(要用所致)'이고, 권리의 유래는 기재하지 않았다. 권리의 유래는 주로 상속, 증여, 매입 등이 기재되고, 방매 이유는 가계가 어렵다거나, 장례비용이 없거나, 이매(移買) 등 구체적인 내용을 적었다.
조선후기로 갈수록 권리의 유래를 아예 기재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방매 이유도 '요용소치(要用所致)', '절유용처(切有用處)' 등으로 간단히 기재하였다. '요용소치(要用所致)'는 필요한 곳이 있어서라는 뜻으로 조선후기에는 이외에도 '절유용처(切有用處)'와 같이 절실하게 쓸 곳이 있어서라고 쓰는 등 토지 매매의 구체적인 사유는 생략하는 경우가 많았다.
거래 대상 토지의 소재지는 춘천(春川) 남산외(南山外) 사동리(寺洞里) 재관곡(齋官谷) 만복동(萬福洞)의 시자(詩字) 자호(字號) 70지번으로 이곳은 현재 춘천시 남면 가정리 일대로 짐작된다. 토지의 면적은 7뭇[束] 2짐[卜]의 소출이 나는 2일경(日耕)과 논 3마지기[斗落], 9배미[夜味]이다. '뭇'이나 '짐'은 수확량의 부피를 기준으로 하였고, '일경'은 하루갈이를 뜻하는 말로 경작시간을 기준으로 한 면적 단위이다. 배미는 한 구획 내, 즉 지번내에서 다시 구획이 나뉠 경우에 쓰며, 9배미는 9구획으로 나뉜 것을 의미한다.
사방경계를 보면 동쪽과 북쪽으로는 시내[川]가 있고, 남쪽은 노비 관심(官心)의 논이, 서쪽은 산이 있다. 토지의 매매 가격은 동전 50냥이다.
매매 토지와 관련하여 이전에 작성했던 문기인 본문기(本文記)는 매입자에게 모두 넘겨주는 것이 관례였다. 이 문서에는 본문기 1장을 내어준다고 기재하였다.
문서의 말미에는 해당거래와 관련된 사람들이 차후에 본 거래에 대하여 이의나 분쟁을 제기할 경우 이 명문을 증빙문서로 삼아 관청에 신고하여 바로잡으라는 투식적인 문구를 쓰는데, 이 문서에는 생략되었다. 방매인과 매득인 이외의 거래참여자는 증필(證筆) 정희길이 있다. 보통 노비는 손가락 마디를 그려 넣는 수촌(手寸)으로 서명을 대신하는데, 해당 명문에는 방매인 남자종 소상철이 노비임에도 수촌을 쓰지 않고 착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