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2년(순조 32) 11월 10일 유학(幼學) 홍익헌(洪益憲)이 황씨(黃氏)의 노비 만복(萬卜)에게 토지를 방매하면서 준 토지매매명문이다.
일반적으로 명문에는 작성시기와 매득인, 권리의 유래와 매도이유, 거래목적물의 소재지 및 면적표시, 매물의 가격, 본문기의 교부여부 및 처리방법, 추탈담보문언, 방매인과 거래참여자 등을 기재하였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이러한 사항들 중 일부가 생략되기도 한다.
이 문서에는 기재된 토지의 방매 이유는 '요용소치(要用所致)'이고, 권리의 유래는 '외변(外邊)깃득전[衿得田]'이다. '요용소치'는 '필요한 곳이 있어서' 라는 뜻으로 조선후기에는 이외에도 '절유용처(切有用處)'와 같이 절실하게 쓸 곳이 있어서라고 쓰는 등 토지 매매의 구체적인 사유는 생략하는 경우가 많았다. '깃득'은 분재(分財)하여 자기 몫을 받는 것을 이르므로, '외변깃득전'은 외가 즉 어머니로부터 분재받은 밭을 뜻한다.
방매 대상 토지의 소재지는 춘천(春川) 남산외(南山外) 추곡면(楸谷面) 류대곡리(柳垈谷里) 양자원(量字員)이다. 이곳은 현재 춘천시 남면 추곡리 일대로 짐작된다. 토지의 면적에 대해서는 27속전은 1짐[負] 5뭇[束], 30지번의 밭은 2짐 5뭇, 31속전은 3짐 4뭇이며, 3곳의 토지는 합하여 2일반경이라고 하였다. 사방경계를 보면 동쪽은 산이, 남쪽은 노비 쇠돌[金乭]의 논이 있다. 서쪽은 노비 생접(生接)의 밭이 있고, 북쪽으로는 작은 길이 나 있다. 토지의 매매 가격은 동전 6냥이다.
토지의 면적에 대한 표시는 수확량, 파종량, 경작시간 등을 기준으로 산출하여 기재하였다. 해당 토지는 수확량이 기준이 되는 짐・뭇, 경작시간을 뜻하는 일경(日耕)으로 면적을 나타내었다. 배미는 두렁수를 나타내는데 두렁의 크기는 토지마다 달랐다.
본문기는 매매 토지와 관련하여 이전에 작성했던 문기로 조선시대에는 토지거래를 할 때 이전에 작성된 문서까지 모두 넘겨주는 것이 상례였고,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그 사유를 밝혔다. 이 문서에는 본문기에 다른 전답에 대한 사항이 기재되어 있어 내어줄 수 없다고 이유를 기재하였고, 신문기 2장을 준다고 하였다.
문서의 말미에는 소유권 이전을 확고히 하기 위해 추후 분쟁가능성에 대한 담보 문구를 명시하였다. 방매인과 매득인 이외의 거래참여자는 박자화(朴自花)가 있는데, 자필(自筆)이라고 기재하고 있다. 자필은 방매인이 직접 문서를 작성하는 경우에 쓰는 말로 증인(證人)을 잘못 기재한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