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7년(정조 11) 2월 2일에 류생원댁(柳生員宅) 노비 득금(得金)이 상전을 대신하여 이험봉(李險奉)에게 토지를 방매하면서 준 토지매매명문이다.
명문은 조선시대에 전답, 노비, 가옥 등 각종 소유재산을 매매할 경우에 해당 거래내역을 일정한 양식에 따라 문서로 작성하여 매도인이 매수인에게 주는 계약서이다. 매매문서에는 매매사유와 이를 소유하게 된 경위, 매매토지의 소재지와 매매가, 매도에 따라 권리가 이양되었음을 증언하는 문구 등을 기재하도록 하였다. 이 문서에는 매매 대상 토지의 소유 경위는 생략되어 있고, 매도 사유는 '요용소치(要用所致)'라고 기재되어 있다. 이는 필요한 곳이 있어서 라는 뜻으로 조선후기에는 이외에도 '절유용처(切有用處)'와 같이 절실하게 쓸 곳이 있어서라고 쓰는 등 토지 매매의 구체적인 사유는 생략하는 경우가 많았다.
매매 대상이 되는 토지는 춘천(春川) 남산외면(南山外面) 사동리(寺洞里) 대곡(垈谷)의 잠자(潛字) 자호(字號)에 위치한다. 이곳은 현재 행정구역상 춘천시 남면 가정리 일대로 짐작된다. 면적은 1배미[夜味], 2마지기[斗落只] 5되지기[升落只]이다. 조선시대 명문의 면적의 표시는 소출량, 파종량, 경작시간 등을 기준으로 산출하여 기재하였다. 배미는 밭의 두렁수를 이르고 마지기와 되지기는 소출량에 따른 면적 단위이다. 1마지기는 1말의 소출이 나는 땅을, 되지기는 1되의 소출이 나는 땅의 면적을 이른다.
사표를 살펴보면 남쪽에는 개천이 있고, 동쪽으로는 길이 나 있다. 서쪽에는 노비 말덕(唜德)의 논이 있고 북쪽으로는 이금동(李金同)의 논이 위치해 있다.
토지의 매매가격은 동전 15냥이다. 조선시대 토지매매 수단은 포목, 미곡, 소, 화폐 등이 있으나, 시기별로 매매수단은 달랐다. 상평통보가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18세기 이후의 매매명문에는 포목이나 미곡 대신 화폐를 사용하는 사례가 많았다.
본문기는 매매 토지와 관련하여 이전에 작성했던 문기로 조선시대에는 토지거래를 할 때 이전에 작성된 문서까지 모두 넘겨주는 것이 상례였고,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그 사유를 밝혔다. 이 문서에는 본문기에 다른 전답에 대한 사항이 기재되어 있어 내어줄 수 없다고 기재하였다.
문서의 말미에는 소유권 이전을 확고히 하기 위해 추후 분쟁가능성에 대한 담보 문구를 명시하였다. 매매 당사자 외에 이 매매에 참여한 사람으로는 정인(訂人) 김해강(金海江)과 필집(筆執) 박순남(朴順男)이 있으며 수결도 하였다. 문서의 뒷면에는 '터곰노무'라 기재하고 착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