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년(戊寅年) 3월 춘천부의 유생 서유빈(徐有彬) 등 40명이 연명(聯名)으로 성주(城主)에게 올린 상서(上書)이다.
상서는 소지의 한 종류이며, 소지는 진정(陳情), 청원(請願), 소송(訴訟)의 성격을 가진 문서로 천민, 여성, 사대부 등의 다양한 백성들이 자신들의 민원 해결을 목적으로 관청에 올리는 것을 말한다. 조선후기 작자미상의 서식 용례집인 유서필지(儒胥必知)에 그 서식(書式)이 나와 있으며, 성격에 따라 소지류(所志類)를 나누었다.
양반층이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여러 사람이 연명한 소지류 문서를 등장(等狀)이라고 한다. 이러한 문서는 주로 산송, 효행, 정려가 대부분이다. 이 상서는 32명의 이름이 연명되어 있어 등장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소지는 박성규(朴成逵)의 효행이 지극한데도 포양(褒揚)하지 않고 있어 흠전(欠典)이 되니 임금에게 알려 포양하는 은전을 입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내용이다. 박성규는 10살에 어머니가 아플 때 손가락의 피를 먹이고, 커서는 아버지를 지극 정성으로 모셨으며,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삼년상을 치르며 술과 고기를 먹지 않아 하늘도 감동할 정도의 효자였으며, 그의 처 김씨도 시아버지를 극진히 모시고, 집에 화재가 났을 때 불 속으로 들어가 구했다고 한다. 또 그의 큰며느리 최씨는 시어머니를 잘 모시며 시어머니의 변을 맛보며 병세를 살피고, 밤에는 하늘에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이처럼 박성규는 평생 동안 효행을 실천하였으니, 임금께 아뢰어 정포(旌褒)의 은혜를 입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유학 서유빈 외에도 이현상(李炫常), 이봉휴(李鳳休)를 포함한 40명이 연명하였다.
이에 뎨김[題音]에서는 26일에 처분을 내려, 신관이 오면 그때 의논해서 하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