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사년(丁巳年) 9월에 춘천부 유생(儒生) 윤석록(尹錫祿) 외 62명이 도순사(都巡使)에게 연명(聯名)으로 올린 상서(上書)이다. 상서는 소지의 한 종류인데, 소지는 사대부(士大夫)와 천민(賤民)을 아우르는 일반 백성들이 민원을 제기할 목적으로 관청(官廳)에 올리는 문서를 말한다. 조선후기 작자미상의 서식용례집인 유서필지(儒胥必知)에 그 서식(書式)을 기재했으며, 상언(上言), 격쟁(擊錚), 단자(單子), 발괄[白活], 의송(議送)으로 나눴다. 이에 각각 성격에 맞는 문서인 상서(上書), 원정(原情), 등장(等狀), 소지(所志)가 소지의 종류로 들어간다. 소지를 받은 관청은 처분을 소지의 여백에 써서 다시 내려주는데 이 처결문을 뎨김[題音], 제사(題辭)라고 한다. 이 뎨김을 통해 사건의 처분과 권리를 증명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소지해야 했다. 따라서 소지는 고문서 중에 매매 문서와 더불어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소지는 당시의 사회・경제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사료로써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
양반층이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여러 사람이 연명한 소지류 문서를 등장이라고 한다. 이러한 문서는 주로 산송, 효행, 정려가 대부분이다. 이 상서는 62명의 이름이 연명되어 있어 등장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문서의 내용을 보면 본읍(本邑)에 고사인(故士人) 최승(崔昇)의 처(妻) 박씨(朴氏)의 절행(節行)에 대해서 본부(本府)와 영문(營門)에 호소하고 있다. 윤석록 등은 근세에 열녀의 절행은 많았지만 박씨와 같은 절행은 없었다 하였다. 최씨에게 시집와 시부모를 모시고 동서들을 보살피고 남편이 해마다 병에 걸려도 정성을 다해 보살폈다. 남편이 병이 깊어져 일어나지 못하자 따라 죽고자 남편의 장기(葬期)가 임박했을 때 물과 음식을 먹지 않았고, 결국 숨이 끊어져 동시에 하관하게 되었다. 이러한 박씨를 보고 윤석록 등은 천고(千古)에 이런 일은 드물었다면서 합하(閤下)께서 포양(褒揚)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이에 뎨김[題音]에서는 박씨의 열행(烈行)은 장차 들어보고 읍(邑)의 보고를 기다렸다가 계문(啓聞)할 때 헤아려 보겠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