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술년(庚戌年) 8월 춘천부 유생(儒生) 서유빈(徐有彬) 등이 연명으로 순상합하(巡相閤下)에게 올린 상서이다.
상서는 소지의 한 종류로 소지는 사대부(士大夫)와 천민(賤民)을 아우르는 일반 백성들이 민원을 제기할 목적으로 관청(官廳)에 올리는 문서를 말한다. 조선후기 작자미상 서식용례집인 유서필지(儒胥必知)에 그 서식(書式)을 기재했으며, 상언(上言), 격쟁(擊錚), 단자(單子), 발괄[白活], 의송(議送)으로 나눴다. 이에 각각 성격에 맞는 문서인 상서(上書), 원정(原情), 등장(等狀), 소지(所志)가 소지의 종류로 들어간다. 소지를 받은 관청은 처분을 소지의 여백에 써서 다시 내려주는데 이 처결문을 지방관이 써주면 뎨김[題音], 관찰사나 어사가 기재하면 제사(題辭)라고 한다.
이 뎨김을 통해 사건의 처분과 권리를 증명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소지해야 했다. 따라서 소지는 고문서 중에 매매 문서와 더불어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소지는 당시의 사회, 경제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사료로써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
양반층이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여러 사람이 연명한 소지류 문서를 등장이라고 한다. 이러한 문서는 주로 산송, 효행, 정려가 대부분이다. 이 상서는 32명의 이름이 연명되어 있어 등장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소지는 기미년 9월에 춘천 유생(儒生) 김효연(金孝淵) 외 31명이 순상합하(巡相閤下)에게 올린 상서 및 을미, 계미, 무술년에 춘천 유생 서유빈 등이 연명으로 올린 소지와 내용상 관련이 있다. 박성규(朴成逵)와 계처 김씨(繼妻金氏) 그리고 장자부 최씨(長子婦崔氏) 이 세 사람의 지금까지의 효행(孝行)을 알리면서 일문삼효(一門三孝)의 포양(褒揚)을 해 달라고 청원하고 있다.
해당 문서의 내용을 보면 효자(孝子) 성규(成逵)는 그 어머니가 병에 걸려 위급할 때 단지(斷指)하였고, 왕상(王祥)을 다시 보는 듯 아버지를 극진히 모시었으며, 그의 처 김씨는 시아버지가 병에 걸려 씹어 삼키지 못할 때 음식을 연하게 만들어 잘라 주었다. 또 집에 불이 나서 가족들이 다 나왔지만 늙은 아버지 홀로 집에 나오지 못할 때 김씨가 불속으로 들어가 업고 나왔다. 그리고 큰 며느리 최씨는 박성규가 죽고 나서 시어머니를 지극 정성으로 모셨는데, 자신도 늙고 병들었음에도 시어머니의 변을 맛보며 병세를 확인하고, 밤에는 하늘에 기도를 올렸다. 이렇듯 3인의 행실에 대하여 순상합하가 임금께 아뢰어 정포(旌褒)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유학(幼學) 서유빈 외에도 33명이 연명하여 요청하였다. 이에 뎨김에서는 21일에 처분을 내리길 포양은 저절로 그때가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