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국(朴柱國) 가장(家狀) 초문
- 등록번호
- 00016452
- 생산일자
- 미상
- 생산지역
- 미상
- 생산자
- 박주국(朴柱國)
- 수집처
- 김현식
- 소장자
- 춘천학연구소
-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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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는 박주국(朴柱國)이 증조고(曾祖考) 가장(家狀)에 대해 쓴 초문(草文)이다. 문서에서 박주국이라는 이름은 나오지 않지만 증조고를 기록한 부분에서 부친이 박리원(朴履遠)인 것과 1783년에 작성된 박리원의 준호구를 통해 아들의 이름이 박주국임을 알 수 있다. 박주국은 자신이 박씨(朴氏)로 신라의 시조에서 나왔지만 너무 멀어서 자세하지 못한다고 하며. 고려 초에 박근(朴根)이 공신으로 낭주군(朗州君)에 봉해져서 그곳에 터를 잡은 사실을 기재하였다. 그 뒤에 상장군 박대장(朴大章)이 송경(松京)으로 옮겼다고 하였다. 그리고 조선에 들어와서 공조판서 박보용(朴寶龍), 판윤 박영(朴營) 부자가 모두 큰 벼슬을 하였으며, 선조 때 훈련부정 박징(朴澄)이 원종 2등공신에 녹권되었다고 하였다. 이후 부정공(副正公)의 아들 훈련원정 박몽량(朴夢亮) 때 비로소 춘천에 살기 시작했다고 하여 춘천에 정착하게 된 과정을 서술하였다. 다음으로는 자신의 증조인 박영(朴暎), 조부 박동호(朴東皓), 부친 박리원(朴履遠)을 밝히고 증조고(曾祖考)의 일화와 후손들을 기록하였다.
가로73cm, 세로29.2cm
- 사용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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