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1년(고종 28) 8월 10일에 작성된 시권이다. 이때, 경무대(景武臺)에서 구일제(九日製)를 시행하였는데, 같은 날 <고종실록>과 <승정원일기> 기사에서도 왕세자가 시좌한 상태에서 구일제를 행하였다는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경무대는 고종대에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북문인 신무문(神武門) 북쪽에 넓은 공간을 확보하고 그곳을 경무대라 하였다. 중심 전각은 융문당(隆文堂)과 융무당(隆武堂)이다. 경무대는 융문당, 융무당과 함께 경복궁 중건 공사가 거의 마무리된 1868년(고종 5) 9월에 조성되었다.
당시 시험 종류는 부(賦)였고, 시제(詩題)가 ‘人心和於下, 天時應於上’[사람의 마음이 아래에서 화목하면, 하늘의 때가 위에서 조응한다.]이었다. 이 시권은 이때 작성된 시권으로 여섯 글자씩 20개의 대구(對句)로 작성하였다. 각각 대구의 앞에 숫자를 써서 대구의 숫자를 용이하게 파악하도록 하였다. 한편 9월 9일에 보는 시험을 구일제라고 하며, 국제(菊製)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