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조선후기 과시(科試)에서 작성된 시권(試券)이다. 오른쪽 하단에 ‘근봉(謹封)’이라고 적고 성명과 거주지를 적어서 말아서 묶어 놓았다.
시권은 과거와 성균관·사학의 학교 시험, 백일장 등 각종 시험에서 작성된 제술시험의 답안지를 가리킨다. 답안을 작성하는 물리적인 형태의 종이는 시지(試紙), 명지(名紙), 명저(名楮)라고 일컬었는데, 답안이 작성되면 문서의 한 형태로 파악하여 시권이라고 일컬었다. 동일한 대상을 가리키지만 물리적인 형태의 종이와 공적인 효력을 갖는 문서를 개념적으로 구분한 것이다.
시권에 수록하는 정보는 오늘날의 시험 답안지와 유사하다. 시험 종류나 시기에 따라 약간씩의 차이는 있기는 하지만 답안을 작성한 사람의 인적 사항, ‘서제(書題)’라고 불린 시험 문제와 답안, 답안 제출 순서인 자표(字標), 성적이나 등위 등이 공통적으로 기재되어 있다. 한 장의 시권에는 답안 뿐 아니라 응시와 채점의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시권의 성적은 ‘삼중(三中)’이고, 40구(句)로 격구(隔句)에 압운(押韻)을 하였다. 압운한 글자는 제목에 있는 결(闋)자이다. 이 시의 제목에 나오는 출전은 다음과 같다. 송나라 학자 주희가 지은 「초은조」의 서문에 “10월 16일 밤 허진(許進)이 거문고를 끼고 나의 서당에 들렀다. 밤은 깊고 달은 밝으며, 바람과 이슬은 찬데, 줄을 퉁기는 곡조 소리가 매우 비장하였다.”라는 구절이 보인다. 주희는 『초사』에 실린 회남소산(淮南小山)의 「초은(招隱)」을 모방해서 이 곡조에 노랫말을 붙였다고 했다. 회남소산은 한나라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의 일부 문객에 대한 총칭이다.